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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the UK

죽을 때 생각나는 사람


어제.... 어쩌다 죽을 고비를 한 번 맞이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내가 탄 버스가 고속도로에서 다른 트럭하고 자동차들하고 부딪히는 사중병렬충돌 사고가 있었는데, 버스 유리창이 깨지고 엔진이 나가고 난리였지만 다행히도 버스 안 사람들은 모두 무사했다. 버스와 트럭 사이에 낀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어쩌면...... 죽었을 수도 있다. 머리에서부터 피를 무지 흘리고.... 연기가 자욱한 차 안에서 겨우 꺼냈으니까..

나중에 버스에서 내려서 본 광경은 좀 처참하고 슬펐다. 트럭이 제일 멀쩡했고, 자동차들은 모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찌그러져 있었다. 조금만 뭔가 잘못되었으면 내가 탄 버스도 완전 넘어져서 전복될 수 있었던 상황이라는 생각까지 다다르자, 죽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섬짓하게 밀려왔다.

그런데, 버스 차체가 미친듯이 흔들릴 때에도, 사고가 난 버스 안에서 다시 찾아온 실신 증상을 혼자 이겨낼 때에도, 통행이 차단돼 텅 빈 고속도로 위에 난민처럼 서 있을 때에도, 그 아무도 생각나지 않았다. 살려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는 했지만. 그 외에 살아있는 사람 그 누구도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조금 침착해지고 나서야- 엄마 아빠에겐 얘기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곤 그냥 그저 그저 그저 그저........ 남자친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고 그냥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싶은 정도.

아마도 죽을 정도의 고비가 아니었던 건 아닐까, 아니면 그냥 원래 그런 상황에선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긴급한 거 아닐까. 예전에도 바다 깊숙히... 수심 약 5-10미터 정도까지 빨려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아무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빨리 물 위로 올라가야겠다, 올라갈 수 있을까?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 뿐. 그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을 떠올리기엔 난 너무 차가운 인간인걸까?

모르겠다. 이런 일이 있을수록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해야 되는데, 죽는 거 진짜 별 거 아닌데- 힘들게 살아서 뭐하겠나, 날 힘들게 하고 신경쓰이게 하는 것들은 좀 멀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내가 나 스스로도 못돼보이기만 하는 어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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