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금요일, 오랜만에 여유롭게 느긋하게 점심식사를 했다.
정말이지 눈코 다 베어가도 모를 바쁠 나날들이었기 때문에 점심시간을 내는 것도 사실 약간 부담이었지만..
그래도 약속이니까- 하면서 밀린 서류들을 책상위에 버려두고 신촌으로 갔다.
머리 속은 자꾸만 두고 온 서류들로 가득 찼지만...
신촌 거리가 훤히 보이는 스카이 레스토랑에 여유롭게 앉아 얘기를 나누다보니.. 아, 마음이 너무 편했다.
이 점심은 일하면서 알게된 분이 초대해주셔서 이루어진 자리였는데,
그동안 지쳐있었던 심신 때문이었는지, 오랜만의 여유로운 시간 때문이었는지,
나도 모르게 주절주절 별 얘기를 다 했던 것 같다.
내가 한 얘기 중에서 참 쓸데없기도 했지만, 요즘의 내 모습을 반영해주는 것들로는
1. 어렸을 때 보수적이고 절차를 중요시하는 어른들을 보면서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너무나 꽉 막혀 보였던 것들이 어쩔 땐 당연하다고 여겨지기도 하고
숨막히지만 일의 효율 등을 위해선 필요한 절차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들에 익숙해지는 것이 슬프다, 고 말했던 것
2. 누군가가 기회를 주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정말 나의 길일까 묻고 답할 기회를 주지 않고
그 길로 몰아가는 것이 정말 인생의 기회일까, 아닐까, 라고 말했던 것
그리고 들은 얘기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들로는
1. 사회에서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도전정신, 열정, 집중력 등을 주요 요소로 꼽는데..
그런 도전정신, 열정 등을 가지고서도 실패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거라는 것
2. 여러가지 조건들이 다 있어도, 결국엔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이루기 어렵다는 것
요즘 이런 이야기들을 나눌 틈도, 그리고 생각할 틈도 없었기 때문에 ...
약 한 시간 정도의 짧은 대화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요즘엔 논문도 일도 그리고 교수님 앞에서 또 미친듯이 숨도 못 쉬면서 통곡한 사건도 있었고 ..
그냥 난 지금까지 모든 일들을 굉장히 설렁설렁 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맡겨진 일에는 책임을 다 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한 something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해보지 않은 듯.
지금 뒤돌아보면 뭐랄까.. 좀 현실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 둥둥 떠다닌 느낌..??
대충 이 정도면 되겠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인드를 가지고, 그저 안이하게 살았다는 느낌이 갑자기 들었다.
비단 일을 시작하고 나서 뿐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그냥 대충해도 다 어느 정도 잘 되고 성과가 나오니까..
현실에 대한 감각이 별로 없어진 그런 느낌이랄까.
좀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요 며칠은 계속 눈 앞이 흐릿흐릿하고 뭘 해도 멍-하기만 하고.
왠지 계속해서 현실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안든다.
결론은 안 나는 얘기이지만, 결론을 내고 싶어도, 더 이상 쓰기가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