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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뒹굴거리다가 누군가를 만나면 꼭 에피소드가 생긴다. 오랜만에 연구실 애들하고 영화보러 가자며 다같이 나갔는데 막상 간 곳은 학교 Student Union에서 무료로 상영하는 Phd Movie. ㅋ 학교에 얼마 전에 Phd comics 저자도 특강하러 왔다 갔는데 요즘 왜이렇게 이 콘텐츠를 학교에서 밀어주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왜 우리는 다같이 나들이를 나가도 캠퍼스 안에서 이런 영화를 봐야되냐며 자조섞인 농담에 낄낄거리고 연구실 책상 앞에서만 대화하던 우리가 보통 사람처럼 햇살을 받으면서 길을 걸으며 시시껄렁한 대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서로 어색해 하기도 하면서도 왠지 모를 두근두근함을 감출 수 없었다. 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삶이라니 써놓고도 괜히 안쓰럽고 빵터짐 ㅠㅠㅠ
어쨌든 영화 시작 전에 무료!!로 제공된 음식과 맥주를 비롯한 각종 음료수들을 마시면서 수다 떨다가 동생이 영국 왔었던 얘기가 나와서 애들이 좋았겠다, 스트레스 좀 풀렸겠다 어쩌고 그러길래
나 그래도 동생 있는 동안에도 4일이나 통역 알바도 했고 컨퍼런스 어플리케이션 두 개나 써서 보냈어~ 그리고 두 개 다 통과됨 ㅋ
그랬더니 바로 나오는 얘기가 바로 See? She is still Korean 이었다.
평소에는 한국인 같지 않았다는건가? 싶어서 뭔 뜻이냐고 물어보니까 대략 자기가 아는 한국인들은 대부분 완전 hard workers 인데 너는 안 그래보인다고 ㅋㅋㅋㅋㅋ 근데 함정은 안 그래보이는데 뒤에서 할 일 다 하고 있다며. 너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 것 같다고...
옆에서 또 다른 애가 맞아 맞아 hard worker로 전혀 안 보임 ㅋㅋ 라면서 거드는데
뭥미....?? 나 나름 공부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게다가 맨체스터에서는 소문난 공부벌레였는데 여기선 안 그래보인다고 해서 뭔가 느낌이 미묘했다.
맨체스터 애들보다 여기 애들이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작년보다 정말 공부를 덜 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다른 한국인들이 나보다 더 심한 것인가.
결론은 전학 후에 이런저런 일로 프랑스도 가고 독일도 가고 여기저기 여행도 많이 다니기도 했을 뿐더러 애들이 보기에 보통 한국 애들은 취미 생활 없이 맨날 앉아만 있는데 나는 매일 운동도 하고 놀러도 다니고 술도 마시고 커피도 마시러 나가고 해서 신기해 보였나 봄.
게다가 내가 몇 번 술마실 사람 없다고!!! 우리 방 애들은 하나같이 독실한 무슬림에 크리스쳔에 가족있는 유부남에 ㅡㅡ 그래서 내가 너네는 왜 술 마시러 안 가냐!!!! 아오!!! 나에게 술 친구를 소개해달라!!! 이러면서 승질을 낸 적이 있기 때문에 ㅋㅋㅋㅋㅋ 더 그랬을 수도. 다른 한국인들은 티 안내고 소리소문 없이 집에서 혼자 술 마시고 바다티비로 한국 티비 프로그램을 꾀고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이것들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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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본의 아니게 학창시절에 애들이 제일 재수없어하는 타입인 학교에서 맨날 졸고 공부 안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시험 점수는 잘 나오는 학생이 되어 버린 것 같아 머쓱하기는 무슨.... 어렸을 때부터 늘 그런 캐릭터였기 때문에 딱히 할 말이 없음 ㅋㅋ
생각해보면 중고딩 때도 애들이 맨날 나 수업시간에 조는 모습 가지고 놀리고 (자면서 안 자는 연기한다고), 맨날 학기 중이든 방학 중이든 보충 수업이랑 야자 어떻게 해서든 땡땡이 치고, 집은 코 앞인데 맨날 1교시 종 치고 등교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 학교 와서 세수하고 이 닦던 내가 고등학교 때 맡았던 임원?은 뭐 죄다 오락부장에 체육부장 이런 거였고 매 년 수학여행마다 애들이 내 장기자랑을 기대할 정도로 게으름과 웃김과 허당에 유흥의 대명사였는데 시험만 보면 그래도 나름 늘 상위권에 속하니 애들이 어이없어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종종 학기 초엔 애들이 내 외모와 행동만 보고 날라리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ㅋㅋㅋㅋㅋ 하.. 이거랑 관련된 것도 에피소드가 많은데 다음에 기억나는대로 따로 적어봐야겠다.
어쨌든 사실 허당이고 노는 걸 좋아하긴 했어도 아무도 안 나오는 주말에 학교에 혼자 나가서 공부한 적도 꽤 많았고 그 시절에 나름 공부 한답시고 밤 샌 적도 셀 수가 없는데 (물론 그리고 나서 학교에서 졸고 지각하고.. 절대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자기 눈에 보이는 것만 보니까 이미지가 "공부 안하는데 성적 잘 나오는 애" 로 잡혔던 듯.
물론 지금도 아주 성실한 학생은 아니라 할 말은 없지만 나는 여기저기 관심사가 너무 다양한 탓에 보통 한국인들에게 기대하는 Hard worker 로서의 자질은 그다지 있는 것 같진 않다. 그런데 안 보이는 데서는 생각보다 열심히 하고 있을지도.
어쨌든 다행인건 난 딱히 모두에게 hard worker로 보여지고 싶지도 않고 실제로도 그렇게 책상 앞에만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실제 우리 교수는 날 볼 때마다 나 같은 hard worker 도 없다며 칭찬 아닌 칭찬을 하기 때문에 이 정도로 좋은 것 같다.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애들 대부분이 연구실 책상에 앉아서 인터넷 서핑하고 페이스북하고 유튜브보고 채팅하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닐거고, 한국에서 시달리던 왜 너는 더 열심히 하지 않니? 를 왜 여기까지 와서 또 들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보통 다른 애들이 생각하는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와 내 이미지의 괴리를 대략이나마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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