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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wing Pains

마지막밤


오늘은 드디어(?) 한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다. 길다면 긴 과정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짧았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9월 학기를 위해 3월부터 정신없이 준비해서 5월에 최종 오퍼 받고 8월 초에 비자를 받아 8월 중순에 출국을 하게 되었으니,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1. 원래 느지막히 내년 즈음 지원할 계획이었으니까 교수님의 강력한 압력에 못이겨 급히 준비할 수 밖에 없었고 2. 늘 닥쳐서 일을 처리하는 내 성격 때문인 것도 있고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운이 좋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난 그저 모든 게 다 감사할 따름이고 그만큼 앞으로 더 정신차리고 지분하게 실력을 쌓아 그 운에 보답하는 수 밖에 없다.

최종오퍼를 받았을 때 내 기분은 "으아니! 내가 정말!!???" 믿기지 않음, 실감이 나지 않음 이었고 이후 일을 그만둘 때까지 두 달간은 "일 그만둔다고 일 대충한다"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더 정신차리고 이를 악물고 모든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려 노력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치는 부분들이 어쩔 수 없이 종종 있었다.. ㅜㅜ) 일을 그만둔 후 한 달 반 중 반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기분에 조금은 늦잠도 자고 그동안 못 만난 친구들을 만나며 아무 생각 없이 지냈고 나머지 반은 이런 상태 그대로 영국에 간다면 바보취급 받을 수도 있겠다는 위압감이 밀려와 책을 읽고 관련 논문 및 기사를 차곡히 모으고 관련 분야에 종사하고 계신 분들이나 교수님들을 만나뵙는 쪽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그리고 지금은 하루 후면 영국에 도착해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며 잠 못 드는 중이다. 가장 걱정되는 건 1. 안전한 집 찾기 2. 영어로 커뮤니케이션 하기 3. 지도교수님과의 관계 4. 꾸준히 지치지 않고 공부하는 것 5. 경제력 정도. 순서는 우선순위 등과 전혀 상관없다. 물론 코앞에 닥친 건 집 구하기... 싸고 좋으면서도 안전한 집을 구해야해서.... 걱정이 많다. 미국에서도 집 구하는 게 생각보다 오래 걸렸던 거 같은데, 지금 오로지 믿고 있는 건 맨체스터에 학생이 많으니까 현지에 가면 그만큼 학생을 위한 집도 많지 않을까 하는 것. 그다음으로 영어는 그냥 할 수 밖에 없고.... 지도교수님은 그저 나와 스타일이 맞기를 바랄 뿐이고 맞지 않더라도 최대한 내가 맞춰야 하겠지만. 4번은 걱정은 하지만 나름 내 특기라고 믿고 싶고! 5번은 장학금 아니면 엄청 돈 많은 할아버지가 일찍 죽은 손녀와 내가 닮았다며 후원을 결심하는 등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답이 없다.

결국 그저 몸으로 부딪히며 해결하고 안정을 찾아야 하는 문제들인데, 이미 고민을 많이 해버려서 막상 현지에서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내 예상과 달라 당황하지는 않을지... 그게 더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저 인내하고 닥돌해야지 어쩔 수 있나.

영국에 머무는 동안 조그마한 소원들이 있다면, 1. 장학금 또는 커리어에 도움 되는 알바 기회 ㅜㅜ 2. 정해진 시간 내에 학위 취득 3.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동생 모두 건강했으면 하고 4. 나이가 나이인만큼 꼭 영국에서가 아니더라도 그 기간 내에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으면 한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건가 싶다가도 나처럼 나름 소탈한 인간이 이 정도 바라는 건 욕심이 아닐거야... 하나씩 꼽아보면 그저 평범한 소시민의 기도일 뿐이잖아 라며 기운을 차렸다. 앞으로 지금까지 겪었던 것보다 더 큰 세상이 내게로 올 것임을 알기에 미친듯이 두근대기도 하지만 그만큼의 시련과 외로움 역시 함께 올 것 역시 알기에 미친듯이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다(벌써부터). 다들 잘 할 거야- 라고 힘을 실어주지만 그것조차도 버겁게 느껴질 순간이 올 것임을 역시 알고있고 그러나 그것들을 스스로 잘 극복하고 일어나 뒤를 돌아봤을 때 느껴질 기쁨과 보람 역시 알아서 언제라도 섣불리 행동하고 싶지는 않다.

늘 처음처럼, 늘 겸손하게, 늘 한결같이, 부모님께 그리고 내게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며, 잘 해보자.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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