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맞닥뜨렸을 때, 세상에 남아있는 우리는 얼마동안이나 그를 못 잊을 것이며, 얼마나 그 때문에 아파하고 그리워할까.
크리스티앙 보뱅은 사랑했던 여인의 죽음을 계기로 이 책을 썼다. 지슬렌느라는 이름을 가진 그 여인은 두 번의 결혼으로 아이가 세 명 있었으며, 그녀의 첫 남편은 작가의 친구였다. 친구 집에 방문했다가 사랑에 빠진 그는 16년 간 그녀를 끊임없이 사랑한다. 그녀에 대한 글을 쓰겠다는 약속대로 그는 그녀의 죽음 이후, 지슬렌느에게 바치는 글을 이 책으로 펴내게 된 것이다.
그는 세상 어디에서도 보기 힘들만한 온갖 사랑의 감정을 글에 쏟아 부어낸다. 주목할만한 점은 그가 쓴 것은 사랑의 "표현"이 아니라 사랑의 "감정"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사랑의 표현은 누구나 남의 것을 베낄 수 있으나, 감정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 있다. 특히나 자신의 언어로 펼쳐낸 감정은 더더욱 그럴 것이라는 가정 혹은 기대 하에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듯한 한 여자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은 읽는 이의 감정까지도 격정적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글이 무조건 그리고 언제나 감동적인 것은 아니다. 보뱅의 상황에서만 보면 더더욱 그렇다. 지슬렌느는 유부녀였고, 아이가 있었고, 친구의 아내였고, 가질 수 없는 여자였다. 게다가 그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채 그녀는 죽음을 맞이했고 그렇게 영원히, 아주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향한 감정을 그 후에야 글로 분출해 냈고.
이쯤되니 뭔가 이상했다. 물론 그녀의 죽음 후에도 아이들을 잘 챙겨준다거나 ... 하는 부분은 진심으로 그가 그녀를 사랑했기에 가능했겠지만, 과거 혹은 현재 그녀를 향한 대부분의 사랑의 감정은 그녀와 함께 할 수 없었기에 더욱 격렬해질 수 있었고 죽음 후에도 그대로 남아있거나 더욱 발전되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에겐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그리움, 그리고 집착이 그녀의 죽음으로 끝까지 이에 대한 욕구가 해소되지 못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 아니었나 하는 말이다. 만일 그녀가 그의 아내였다거나 최소 연인이었다면 장담하건데 그는 이토록 애절하고 간절한 글은 쓰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삶을 되돌아보면 일반적으로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욕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욕구에 비해 훨씬 크지 않나. 물론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떤 욕구이건간에 그 정도가 사그러들긴 하지만 어떤 특정 계기로 인해 다시 또는 더욱 커지는 경우도 많고. 이런 생각 때문인지 격렬한 그의 사랑 표현이 전혀 로맨틱하게 보이지 않고 마냥 불편하고 부담스럽기만 했다. 갖지못한 자의 욕구분출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단지 수단이 조금 고상했을 뿐.
몇일 전 옛 남자친구를 만났다. 한때 그리고 헤어질 때도 내가 멋대로 행동하다보니 그의 소유욕은 점차 강해졌고 나는 역시 그게 마냥 부담스럽고 싫기만 했다. 서로 상처를 많이 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어찌어찌 좋은 사이로 지내고 있는데, 서로의 연애 스토리를 들어주며 넌 그래서 안돼~ 이래서 안돼~ 라며 깔깔대는 동안 서로 간 어느정도 남아있던 욕구, 정확히는 소유욕이 이제는 남아있지 않음을 느꼈다.
그런데 이 경우 욕구 자체의 정도가 사그러들었다거나 아예 없어진 건 아닌 것 같았다. 단지 그 대상이 이동했을뿐. 그 증거로 우리는 그 대상에 대한 자신의 사랑 혹은 관심 (욕구)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내가 쏟는 만큼의 사랑 혹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었다. 어떤 대상을 (지금은) 가졌지만 갖지못한 특정 대상을 향한 욕구의 분출은 계속되고 있었던 셈이다. 전혀 고상하지는 않지만 그 누구도 쉽게 알아챌 수 없는 방식으로.
지금와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느껴지는 건, 갖지못한 것이라해서 언제나 반드시 가져야한다고 느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갑자기 '언제나 반드시 가져야한다'고 느끼는 상태를 '집착'이라고 할 경우 갖지못한 것에 대한 집착과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집착은 어떻게 다를지에 대해 궁금해진다. 전자의 경우 지독한 자격지심의 상태로 끔찍히 싫은 것으로 느껴지는 반면 후자는 상대방 간 동의가 있을 경우 끝없이 아름답게 승화될 수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결국 소유의 욕구를 풀어낼 상대가 있느냐 없느냐 그리고 동의 혹은 합의의 문제인가.
어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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