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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는 주지도 않은 데드라인을... 셀프 데드라인을 맞추겠다고 난리친 결과 밤을 새버렸다. 또 다시 밤낮이 바뀌겠구나, 젠장.. 빨리 자려고 했는데 오늘 갑자기 떠오른 노래가 있어서 그만.
3호선 버터플라이의 스물아홉 문득. 아마도 내가 스무살 때 즈음 많이 들었었을 거 같은데 가사처럼 진짜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이 노래를 들을 때 내게 스물 아홉은 꽤 먼 나이였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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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나에게 스물 아홉이란 굉장히 어른의 이미지였는데, 지나고보니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물론 어른이 될만한 법들을 꽤 겪은 것 같기도 한데, 늘 새로 겪는 사건들과 감정들이 있다보니 아무리 겪고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은 더 많으니.. 스물 아홉이라고 해도, 특히 나처럼 부모에게서 아직 독립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저 애들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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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하고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각자가 서른에 대해 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인과 외국인을 막론하고 대부분 나이 먹는 거 너무 싫다고 하는데 나만 "난 되게 좋은데?"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 그나마 가장 날 이해해준 반응 조차 "응..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기는 하다." 였으니.
솔직히 어렸을 땐 뭘 모르니까 순수하게 재밌는 일들도 많았고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없으니 그 때 그 시간 그 장소에서만 겪을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과 감정들이 많았던 건 맞는 것 같다. 진짜 흑역사라고 생각되는 시기조차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찬란한 빛이 가득하니 말이다. 그런데, 사실 지금까지 걸어온, 겪어온 일들은 다시 겪는 건...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난다. 그 과거가 있었기에 내가 지금 감사할 줄도 알고 사람들을 대할 줄도 알게되고 나 자신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게 되었는데, 그 힘들고 피곤한 과정을 다시 겪으라고 하면- 절대 싫다.
그리고 중요한 건, 난 내 30대가 너무 기대가 된다. 돈 없고 힘 없는 20대도 그렇게 반짝였는데, 조금씩 전문성도 생기고 주체적으로 무언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30대가 될 것 같아서 지금 사실 엄청난 기대에 차 있다. 그리고 40대는 30대에 이루어 놓은 것들을 발판 삼아 진짜 내 인생에 경제적 사회적으로 최고점을 찍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더더욱 기대가 된다.
나이 먹고 일이 생긴다고 해서 더 성숙해지는 건 아니겠지만, 난 그저 30년 동안 쌓아온 내 나름의 내공(?)이 어떻게 발현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발현할지 꽤나 고민 중이다. 최대한 아름답게 예쁜 나로 그리고 그런 시간들로 만들고 싶기에. 게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미래를 그리고 있었는데 개 망하면 안되니까. 그러려면 나 스스로를 갈고 닦는 시간을 지겨워도 인내하면서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진짜 돌을 쌓는 심정으로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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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실 내게 30대에 대한 부담이 없는 건 부모님의 영향도 크다. 대부분 내 나이 또래의 여성들이 결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우리 집은 너무 쿨하달까.
1월 1일 엄마와 통화할 때 내가 "나 이제 서른이야, 어떡해" 라고 하니까 엄마가 "괜찮아, 나이 신경쓰지 말고 하고 싶은 거 열심히 하면 돼. 그리고 결혼도 너무 걱정하지마, 너가 좋아하는 일에 쏟는 노력과 시간에 비하면 결혼은 도박이니까."
.... 어머니, 사람들이 왜 도박에 빠지는데요... 그만큼 유혹적이니까 빠지는 거 아니겠어요...
라는 생각이 지금 갑자기 들었지만, 음... 아무튼, 가족 중에 아무도 왜 결혼 생각 안해!! 왜 결혼 안 해! 결혼 언제 할거야!! 이런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어서 - 친척들 조차 - 감사하게도 스스로 아, 정말 결혼 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지 않는 이상은 그다지 일 듯.
능력만 있다면 계속 혼자 살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그래도 꾸준한 한 명의 데이트 메이트는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 ㅎㅎㅎ 암튼, 요즘은 사랑한다면 굳이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이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적령기를 지내고 있다 보니 결혼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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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선 버터플라이는 고등학교 때 밴드부였던 친구를 통해서 알게 되었었는데, 뭐 지금은 연락은 안 하지만 종종 생각나는 친구다. 살면서 떠나보낸 친구들 중에 아쉽다- 라는 생각이 드는 친구들이 딱 2명이 있는데 그 중 하나.
서로 섞은 말은 많지 않았지만, 다른 애들은 모르는, 아이돌밖에 모르는 애들이 무시하는 락밴드나 국내 인디 밴드들의 음악을 같이 듣고 그 감수성을 공유하며 지냈던 친구다. 내가 바보같은 짓 하면 피식 웃던 표정이 생각나네. 대학에 가면서 연락이 끊겼지만, 왜 계속 인연의 끊을 잡고 있지 못했을까 아쉬워지는 친구.
난 늘 내 선택에 그리고 내가 살아온 길에 후회가 없었다고 믿었는데 서른이 되니 이런 아쉬움도 생긴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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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즈음 까지 쏜살같이 살아온 님들 수고하셨어요. 온 만큼만 더 가면 예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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