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정오 즈음 문득 오늘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도 피곤하고 내일도 6시에 일어나 인터뷰도 가야하지만, 그래도 오늘이 아니면 이런 감정과 생각들을 기록하지 못할 것만 같아서 결국은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한 동안 긴 글을 쓰지 못하고 별로 의미 없는 단문들만 깨짝깨짝댔던 이유는 공부 목적으로 써야하는 글들이 있으니, 글을 쓸만한 에너지가 이곳에까지 미치지 못했던 것 하나와 내 안의 것들을 아직 텍스트로 옮겨올 준비가 안되어 있었던 것 하나가 있다.
오프라인의 세계에서 늘 영어로 된 책과 논문들과 씨름하고 또 그것들을 이해하고 어떻게 보면 실제 생활과 떨어져있다 볼 수도 있는 이론적 용어들을 써가며 글을 쓰고 그것을 쓰기 위해 머리를 굴리다보면 온라인의 세계에서 진지한 글을 쓸만한 힘이 남아있지 않다. 머리 식히기 위해 그리고 쌓인 감정들을 마구 발산하다보면 여지없이 쓰레기 같은 문장들이 나오곤 하는데... 그런 것들을 블로그에 남기고 싶지는 않아서 한동안 병신같은 소리들을 지껄이며 트위터에 집착했다.
그리고 가슴아프고 신경쓰이는 것들은 최대한 오랫동안 외면하고 싶어하는 안 좋은 내 습성 때문에, 이제서야 겨우겨우 힘들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된. 세월호. 아무 소리나 다 쓰는 트위터에서조차 타자조차 칠 수 없었던 아픈 세 글자. 세월호.
그 사건 때문에 많이 아팠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뻔히 알겠고 보이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무력함. 그리고 그걸 알면서도 작은 힘 하나 보태려 하지 않는 내 용기없음에 부끄럽고 또 미안해했다. 이런 감정들조차도 거의 한달이 지난 지금도 그저 사치로 느껴진다. 내가 느끼는 이런 고통이 누군가의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기 때문에.
아무튼, 내 용기없음이 어느 정도 였느냐면 - 해외 연구자들이 세월호 참사 대책 마련에 대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는데, 요즘 페이스북을 잘 안해서 이 성명서가 발표된 이후에야 난 그 사실을 알았던 덕분에 난 참여할 수 조차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든 생각이 '이거 서명했다가 나중에 안 좋은 일 생기는 건 아닐까' 라는 아주 미천한 생각이었다. 안 좋은 일이 생길만한 위치도 아닌 주제에.
요즘 인터뷰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데, 자연스럽게 그들의 역사를 듣게 된다. 그러다보면 나의 역사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하는지에 대한 생각 역시 하게 되는데, 문득 나의 역사는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모습이 과연 내가 늘 생각해오던 내 모습이었는지, 시간이 지나서 나는 내 이런 모습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지 돌아보다보니 나를 향한 부끄러움이 한층 진해지고 말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더라도 나는 활동력이 떨어져서 운동을 할만한 위인은 되지 못한다. 그런 일은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고 또 잘하는 사람, 그리고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같이 그저 골방에 박혀 혼자 지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 관찰하고 조사하고 읽고 쓰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
나는 그 행위를 통해서 내가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 역시 찾고 싶다. 무엇이 문제이고 그 문제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고 왜 지금까지 이어져왔는지에 대해 알고 또 쓰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처절해지고 철저해져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나에 대해 그리고 내 생각과 관점들에 대해. 그것들은 어디서 왔고 무엇에 기반하고 있는지. 막연하게 마르크스주의자라 생각해왔던 것만으로는 이젠 나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힘들어 왔다는 것이다.
얼마 전 엄마가 '넌 말하기 시작했던 3살 때부터 죽음이 뭐냐고 끊임없이 물었지. 그 때부터 어린애가 철학적이었어'라고 말했을 정도로 난 늘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어떻게 가는걸까에 대해 굉장한 많은 시간을 쏟아 왔는데도, 나는 아직도 나를 위해, 그리고 타인을 위해 용기있게 말을 하고 행동할 자신이 없고 내가 도대체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자신이 없다.
무엇이라도 해야한다-라는 결론을 정해두고 시작하려고 한다. 왜 그리고 어떻게. 왜 라는 물음을 답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도 아직은 모르겠지만, 클리셰라 여겨왔던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말이 마음 깊숙하게 자국을 남긴 5.18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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