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접 영어로 썼다는 - 단순한 소문이었던 것일까. 일어 to 영어 번역본밖에 구할 수 없었다. - The Elephant Vanishes라는 단편집에 Sleep이라는 글이 있다. 치과의사인 남편과 결혼해 아들이 있는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였는데, 한가지 평범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밤이건 낮이건 잠에 들 수 없다는 것이다. 밤이면 남편이 잠들 때까지 자는 척을 하면서 기다렸다가, 비로소 남편이 잠들고 나면 거실로 나와 브랜디 한 잔과 함께 안나 카레리나를 읽거나 밖으로 드라이브를 가기도 한다.
처음에는 잠이 오지 않는 것과 전혀 피곤해지지 않는 것에 걱정하던 그녀는, 점점 그것에 익숙해지게 되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나름 만족하게 된다. 그녀에 따르면 사람들은 매 3번째날을 온통 잠자는 데에만 쓰고 있다. 즉 매일 8시간을 잔다고 치면, 3일이면 24시간, 앞에 이틀은 계속 깨어 있는 대신 세번째 날은 잠만 자는 것이다. 사람이 평생 살면서 몇일이나 자고, 먹고, 사소한 것에 쓰는지에 대해서는 본 적이 있었지만, 이런... 매 3번째 날이 통째로 잠자면서 사라진다고 하니 왜 그리 아깝던지.
책을 다 읽고 잠시 가만히 있다가 한동안 잠을 자지 말아야 겠다고 결정했다. 잠들지 않는 것이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잠을 거부하는 것이 꽤나 매력적으로 여겨졌던 까닭이다. 어제 밤, 일찍 잠드는 대신 이것저것 자료들을 읽고, 그게 지겨워지면 잠시 소설을 읽고, 그게 또 지겨워지면 티비를 보고, 또 지겨워지면 자료를 찾고, 메일을 쓰고, 그리고 배가 고파져서 무언가를 먹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새벽 4시에 잠들지 않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눈이 저절로 감기는 것을 참을 수 없어져서 바로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신기한 건, 아침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고,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기분도 평소보다 좋았고 - 오늘이 우연히 기분이 좋은 날이었을 수도 있지만 - 몸도 가벼웠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일부러 잠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사람은 당연히 잠을 자고, 대부분의 동물들도 당연히 그러지 아니한가. 갑자기 멍청한 짓을 했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하루 정도 더 해볼까 하는 '멍청한' 생각이 또 들었다.
잠을 자는 것이, 무언가 행동적인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죽어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제 나는 평소보다 4시간을 더 '살아'있었던 셈이 된다. 실제로 평소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기도 했고. 계속 잠을 자지 않다보면 피곤이 쌓여서 나중에는 수명이 짧아질까? 어떤 이들은 오히려 잠을 적게 자는 것이 건강에 더 좋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나는 도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해야 오래오래가 아니라 조금 더 '오랫동안' 살지를 걱정할 정도로 삶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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