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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wing Pains

우리는 사랑일까 - 알랭 드 보통


 

The Romantic Movement , 우리는 사랑일까

 

 

                                                                                  - 알랭 드 보통

 

 

오랜만에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었다. 맨날 쌓아두기만 하고 읽지 못했었는데 학교를 가지 않으니 이런저런 시간이 많이 생겼달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Kiss&Tell 과 함께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으로 여겨지며, 그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힌다는 '우리는 사랑일까'. 나로서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훨씬 좋았던 것 같은데, 아무튼 드 보통씨의 글솜씨는 여기서도 끊임없이 빛을 발하고 있다. 

 

 

우선 고백하건데, 그리고 약간은 창피하게도, 내 영어이름은 Alice다. 흔하긴 하지만 영화 클로저에서 영국식 발음으로 ' '알'리스 ' 라고 불러주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그 순간 '내 영어이름은 저걸로-!' 결정했었다. 어쨌든 나와 어울린다는 의견도 있고, 유치하다는 의견도 있고 분분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내가 궁금했던 점은 항상 'Alice 라는 영어이름이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떤 느낌이지?' 였다. 영어이름 사전에야 명랑한, 소녀같은, 이라고 나와있지만 보다 직접적인 느낌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그 느낌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이 책 주인공 이름이 바로 앨리스다. 그리고 앨리스를 가장 먼저 수식하는 단어는 '몽상가'. 꽤 마음에 드는 수식이었다. 소설은 제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이지만, 난 곧 앨리스를 '나'라는 단어로 바꿔 마음대로 1인칭 시점으로 책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뭐 앨리스는 나랑 닮기도 했고, 닮지 않기도 했다. 닮은 점이라면 자아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는 것, 자기초월에 대한 갈망, (주제가 사랑이다보니) 오랫동안 남자친구가 없는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중압감이 생겨 이제는 아무도 필요없어 라고 말하는 것, 행복이란 즐거운 상태가 아니라 고통이 없는 상태라고 정의하던 것 등등.

 

 

다른 점이라면, 나는 '사랑의 직각' 따위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랑의 직각이란 다른 일이나 사람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에게 헌신하는 태도이다. 도표로 나타내면

 

 

A                       

 

↓                       

 

B      →      C      

 

이런식인데 나는 전적으로 나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이 좋다. 이러한 직각 관계는 권력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데 말하자면 A, B 사이에서의 권력은 B가 가지고 있다. B는 C에 관심이 있으므로 A는 B에 헌신하니까. 앨리스는 A에 위치에 있었다. 물론 나는 B의 위치가 더 마음에 든다. 그러나 저런 직각 관계보다는 A ↔ B 관계가 더 마음에 든다. 가능할런지는 아직 미지수.

 

 

가장 찔렸던 부분은 고통과 생각에 관한 부분. 아픔과 고민이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생각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 나는 전적으로 전자라고 생각해 왔는데, 후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넌 생각이 너무 많아." 신기한 듯 그러나 핀잔하듯 말하던 다른 이들의 머리 속에는 후자와 같은 배경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없다. 나에게 있어서는 문제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과정이 나름대로 즐거우니까. 지성인과 자연주의자의 차이일 뿐이다.

 

 

앨리스는 상대방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길 두려워하고,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는 그 남자에게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 만난 사람은, 그저 자기 자신을 매력적으로 바라봐 주는 사람. 너무나 당연한 결말. 그러나 현실에서는 가장 어려울 것만 같은 결말 같다. 사실 사랑이든 인간관계든 어떤 것에 있어서 수평관계보다는 '직각'이 작용하는 경우가 훨씬 많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A ↔ B를 원하기 때문에 뭐든 어려운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