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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wing Pains

너를 보내는 시간


매우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찡하다거나 슬프지도 않을 뿐더러 좋았던 기억이 떠올라 슬며시 웃음짓게 되는 사람으로 남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가장 사랑했던 이성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람이다. 


가끔 그 사람이 떠오를 때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흔적을 발견하게 될 때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글을 쓸 때다. 인터넷에서 그 사람의 근황을 찾아보기란 매우 어렵지 않은 일이기도 하지만, 주로 다른 사람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정보를 접하게 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가끔 그 사람이 쓴 글이나 관련 글들이 올라오는데 이건 아무리 차단을 해도 피할 수가 없다. 그 글들이 올라오는 계정을 차단해도 나와 연결된 사람들이 직접 링크로 올리는 건 내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눈에 보여도 물론 절대 클릭은 하지 않지만, 링크로 짐작할 수 있는 글의 출처를 알게 될 때마다 그 사람이 떠오르는 건 내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참, 생각해 보니 잠깐 함께 일하던 분의 입을 통해서도 근황을 들었다. 우리가 만났던 사이라는 사실은 언급하진 않았지만, '그 새끼 개새끼니까 이 프로젝트에선 빼시죠' 라는 말을 할까 말까 적어도 천 번은 망설였다. 내 말 한 마디로 이 사람 인생을 어디까지 끌어내릴 수 있을까? 상상하다가도 더 내려갈 데가 있기나 할까 싶어서 이런 건 상상으로만 끝내기로 했다. 그 프로젝트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고 언제 시작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아니, 상황이 어쨌건간에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그 사람에 대해서는 아예 입도 떼지 않은 것,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그러지 않기로 다짐한 스스로를 꽤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 사람을 떠오르게 만드는 또 다른 하나는 글을 쓰는 순간이다. 그 사람은 날 처음 만났을 때 내 가슴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우리가 만나기 전에 몇번이고 접한 서로의 글 때문에 호감이 생겼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어떤 형태의 글이든 글을 쓸 때마다 '넌 글을 정말 잘 쓴다. 너 글이 정말 좋아' 라고 말해주었던 그 사람이 생각난다. 


요즘 한 온라인 매체에 사례글을 꾸준히 쓰고 있는데, 최근에는 이 곳에 보낼 글을 쓸 때마다 그 사람이 더욱 생각나곤 했다. PR 블로그에 올릴 글을 쓰는 방법(?)을 가르쳐준 사람도 그 사람이었고 내게 늘 '조금만 더 다듬으면 인터넷에서 확 뜰 수 있는 글인데...' 라며 아쉬움을 나타내던 사람도 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본인 스스로 그런 걸 활용해서 꽤 많은 추종자들을 이끌고 다니기도 했고. 


당시 내가 그 사람을 그렇게 사랑했던 이유 중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던 이유는 매우 분명했다. 그 사람은 내가 무언가 계속 배우고 생각하고 성장하고 싶어하도록 만들어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꽤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술을 마시며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으며 영상을 보며 나누는 이야기들이 좋았고 단순하고 추상적인 내 논리의 약점을 꼬집어 주는 게 좋았다. 그런 부분을 지적당할 때마다 나는 이 사람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더 열심히 책을 읽고 생각하고 쓰려고 노력했다. 지금 생각해도 뭔가 지적인 행위와 성장에 대한 욕구는 그 때가 제일 높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만큼 성숙해졌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요즘 글을 쓸 때마다 당시 내가 그런 느낌을 받았던 건 당연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갓 대학을 졸업한 25-26살, 그 사람은 29-30살이었는데, 어느 새 5년 이라는 시간이 지나 내가 당시 그 사람의 나이가 되어보니 알게 된 것이다. 스물 여섯과 서른의 삶은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당시 네 살 차이가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면서도 그 사람에게 매우 어른이 되어주기를 요구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를 대할 때는 '나는 너와 비슷한 지식 수준과 경험과 논리력을 갖추고 있는 성숙한 여성이니 그 정도의 대접을 해달라'고 얘기하면서도 여자 대 남자로 만날 때는 '너는 나보다 4살이나 많으면서 왜 더 성숙하게 행동하지 않느냐'며 징징대면서 매우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한 사람의 약한 모습을 목격하고 받아들이기를 매우 거부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서른이 되어보니, 그 당시의 나는 정말 어렸고 그랬기에 착각하고 있었던 부분도 몰이해하고 있었던 부분도 많았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서른이 보기에 스물 여섯은 아직 어린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서른 역시 그렇게 대단한 어른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렸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향한 특수렌즈를 착용하고 있었던 나는 삼십년 정도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해 줄 수 있는 말을 굉장히 크게 받아들였고, 그랬기 때문에 더더욱 그 사람의 부족함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에 다다르자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래서 글을 이런 식으로 쓰고 이런 책을 읽으라고 했었구나- 부터 시작해서, 너가 그 때 그래서 도망쳤구나- 하는 것 까지. 그러니까 결국은 내가 그래서 너를 그렇게 사랑했구나- 부터 시작해서, 너는 그래서 나를 그렇게 떠나려고 했구나- 까지. 


그렇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사람을 끝까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럭저럭인 사람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내가 서른을 너무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반면 그 사람도 여전히 어린 부분이 있었다는 것. 서로를 향한 서로의 관점과 기대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에 그렇게도 몹쓸 짓을 많이 해버리고 말았다는 것. 딱 그 정도로까지만 이해하고 싶다. 


내 부족함도 있었기에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고 말하고는 싶지만, 나는 아직도 우리의 싸움과 잘못의 대부분이, 어쩌면 모든 것이 그 사람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관계를 정리한 당시의 내 결정과 의지가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잘 한 일 중 하나라고도 생각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 씩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하게 만들었던 애정과 열정, 미움과 분노가 조금씩 사그러들면서 5년이 흘렀다. 이제라도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 내가 대견하다. 

 

나는 이렇게 너를 영영 보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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