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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살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생활은 전적으로 카페인에 의지해 돌아간다. 때로는 지나치게 많은 양의 카페인을 흡수해버려 머리와 온 몸이 두근두근대고 어지러운 정도에까지 이르기도 하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기분좋은 불쾌함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정도다.
집에 들어오면서 늦게까지 공부할 생각에 커피 한 잔을 사들고 왔는데, 괜히 우울해져 많은 양을 짧은 시간에 들이켰더니 또 다시 두근두근해지고 말았다. 양파를 먹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양파로 인한 열과 두근거림은 미칠 정도로 싫어하는데 카페인에 의한 느낌은 왠지 우울하기도 하고 몸은 흥분 상태이지만 정신은 굉장히 차가워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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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과 머리는 쿵쿵 울려대서 죽을 지경인데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하게 가라앉아있다. 오랜만에 반길만한 우울과 외로움이 찾아왔다. 사실은 내가 우울함으로 미칠 지경에 다다른 인간이라는 걸 알고 인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신기하게도 우울한 인간은 우울한 인간을 알아본다. 유유상종이라고 또 신기하게도 내 주변인들은 대부분 이기적이고 우울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함께 있을 때 우울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 같은 인간형은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우울해 보이지 않으려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한다. 이기적이고 자존감이 높아 우울해 보이고 싶어하지 않으며 위로 따위도 그닥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울함을 죽을 때까지 스스로 감당해야할, 일종의 업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우울함을 때로는 숭상하기도 하며, 이런 기질이 없는 사람을 때때로 업신여기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무거운 분위기는 자존감의 상징이며 괴로워도 떨쳐내 버리고 싶은 존재는 아닌 것이다.
때때로 주변인이 내가 우울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되면 꽤 기쁘다. 그 순간 나는 그 상대에게 앞으로 딱히 숨겨야 할 사실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해, 내 안의 모든 친근함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상대를 쉽게 인정하지도 않을뿐만 아니라 그만큼 가까워지기도 어렵다. ... 내가 대충 이런 베이스를 깔고 있는 인간이라는 걸 제발 알아주었으면,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사람이 있는데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의외로 내성적인 내가 스스로 나는 어쩌고 저쩌고 하니 나를 어쩌고 저쩌고 해줘라는 말을 하기도 쉽지 않다. 상대에 대한 관심과 관찰력이 조금은 있었으면 하는데, 힘들다면 적어도 내게만은, 역시 쉽지 않다.
개인적인 차원의 관계에서 쉽지 않다는 생각이 계속되면 나는 쉽게 포기해버리는 편이다. 혼자 노력해서 잘 될 일이라면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상대방을 변화시키거나 움직일 필요 따위는 거의 느끼지 않는다. 그 사람은 그대로 행복하고 편할 수 있는데, 굳이 내가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실제로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는 편은 아니어서 쉽게 무기력해지지는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정말이지 그 때가 오면 그 때야말로 정말이지 마지막이 오고야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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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 사상을 공유할 수 있고 뒷받침해줄 수 있는 사상가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열망하는 것에 비해 실제로는 그럴만한 사상가들의 저서를 열심히 읽어보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니체에게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읽다보니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다보니 꼭 사상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까지 생각이 다다랐다. 그저 많이 읽고 그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을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발전시켜 나가면 어떨까 하고. 그렇다면 굳이 내 생각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사상가의 존재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지지해 줄 수 있는 사상가와 그의 작품들을 찾아나선다. 그렇게 찾아낸 것들은 때때로 글 안에서 인용해 자신의 박식함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언어로 표현해야 할 번거로움을 없애기도 한다. 인용의 즐거움을 한껏 누리고 있는 몇몇의 글을 보며 한 때는 부러워했으나, 진정으로 어떤 사상가의 사상을 이해하고 공유하고 있다면 굳이 그런 인용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그 어구에 대한 인정과 동의보다는 깊은 사유와 글을 통한 표현으로서의 토론이 훨씬 의미있고 스스로의 발전에 유익하지 않은가하고 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니체가 -라고 했듯이' 등등의 말을 쓰지 않았던 건 그런 말들을 기억하지도 못했을뿐더러 글을 쓸 때 굳이 찾아서 옮겨적기도 귀찮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해서 내 사고나 사상에 내가 읽은 책들이 아예 영향을 주지 않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한때는 나 역시 인용의 즐거움을 느껴보고자 열심히 옮겨적은 적도 있었으나, 글쎄 겉으로 보기에 글은 더욱 섹시해지는 것 같긴한데 꼭 그래야만 한다는 압박으로 옮겨적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어떠한 이론이나 사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자유자재로 인용 및 응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을 느끼지만, 내 기억력이나 글쓰는 습관 등을 따져보면 앞으로도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냥 닥치는대로 읽기나 하자. 우선은 우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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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리의 대화 중 주로 내가 언급한 것들을 적어보면,
1. 점점 만남과 이별에 무뎌진다.
2. 대단하다고 생각되던 일들이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3. 이렇게 어른이 되어버린건가.
그리고 이것들에 대한 생각과 느낌들을 적어보면,
짧게는 몇 년 전에 느꼈던 대단한 감정들은 이제 거의 느끼지 못하겠지. 그렇게 모든 것에 익숙해져버리고 말았으니까. 이제는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일도 그다지 많지 않다. 대부분 경험해 보았으니까.(라고 해봤자 거기서 거기인 것도 알고 있다. 제발 누군가들이 비웃지는 말아주길.) 경험해보지 않았다 하더라고 하면 못할일이 없다는 걸 알기에 그다지 흥분될만한 일도 없다. 그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만, 그런 것들은 경험해 보지 않아도 좋으니까, 바랄뿐. 설사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제는 감당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을 먼저 하는 내가 무섭고 낯설고. 그러면서도 힘겨워할 나를 생각하면 또 아프고 차갑고. 내 가슴은 어떻게 해야 다시 뜨거워질까. 공허함을 잠으로 먹을 것으로 그리고 읽어야 할 것들로 채우고 채우고 꾸역꾸역 밀어넣고 밀어넣고 해도 그것도 거기서 거기. 이런 보잘 것 없는 나를 내보이기 싫어서 겉으로는 항상 exciting한 존재인마냥 행동하는 것도 그저 힘겹구나. 나도 내가 이렇게 버거운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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