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 같다. 감정에 참 무뎌졌다는 생각을 한다. 무뎌졌다기보다는 반응이 느려진 것 같다. 모든 감정의 변화에 일일이 반응했던 때의 괴로움과 피곤함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어서인 듯 하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내가 완전히 이성적인 인간인 것도 아니고 예전의 내가 완전히 감성적인 인간도 아니었다. MBTI 상담 중 기억나는 몇 가지 대화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성과 감성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울어도 단순히 '슬퍼서' 우는 타입이 아니라고. 우는 행위에도 타당한 이유와 논리구조가 존재하는 인간형이라고. 생각해보면 한 번이라도 "그냥" 슬펐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유를 필요로 하는 인간이다. 짜증날정도로 왜? 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그것도 많이 참고 내뱉는 것들임을 누군가들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내가 알고자하는 것만큼 인내심도 많다는 걸.
뭐 쓸데없이 또 나에 대한 이야기로 빠진 거 같은데, 아무튼, 어떤 관계가 일상이 된다는 건 익숙해짐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만큼 무미건조함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어느 새 똑같아져버린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일탈을 꿈꾸고 그렇게 시들지 않는 삶에 대한 의지를 찾아나선다. 매일매일이 다르고 항상 무언가에 익숙해질 준비를 해야 한다면 그건 또 굉장히 피곤하고 안정감을 느낄 수 없어 우리는 그토록 '일탈'에 열광하는 것이다. 그렇게 익숙해진 관계에서도 일탈이라고 부를만한 새로운 느낌을 종종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그 관계 자체가 삶이 될 수 있을까.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새로운 것에 양 쪽이 얼마나 동의하느냐 역시 문제겠지. 사람들은 종종 선호하는 것이 다르고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하더라도, 그리고 그런 것쯤은 억지로 뒤틀릴 수도 있는 사항이니까. 그래서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또 때로는 그런 것들이 너무나도 아무 것도 아니어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익숙함과 새로움으로 언제까지 자연스러운 곡선을 그려나갈 수 있는 것일까. 너에게 일상이 되고도 싶지만 낯섬도 되고 싶어.
Y에게 S가 왜 좋아? 라고 묻자 Y는 "항상 만날 때마다 새로워.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어." 라고 대답했다. 그때는 그 말을 분명히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좋아서 편한 것보다 편해서 좋은 감정에 푹 빠져 있었던 때였으니까. 그런데 좋아서 감정이 불편해지는 경우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기분나쁜 불편함이 아니라 그저 불안함으로 지금 이대로의 나로는 안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지금은 예전엔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항상 만날 때마나 새로"운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싶"은 사람이 조금은 되어보고 싶다. 아직은 보잘 것 없지만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알기 위한 노력, 알아가기 위한 노력, 그리고 알리는 노력으로 언제나 당신의 영감의 근원지가 되고 싶어.
공부의 이유가 하나 더 생겨버렸다. 나 역시 당신에게 있어 공부의 이유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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