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달 반 정도 매일매일 연락하던 사람이 약 이틀 간 연락이 없었다. 늘 그렇듯이 이런 상황에선 온갖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하필이면 마법 주간이라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던 것도 한 몫 했는데, 사고났나? 부터 시작해서 마음이 변했나? 까지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두고 연락이 없는 이유를 하나씩 추려나가기 시작했다.
뭐 누구나 다 알다시피, 이런 경우에는 수많은 가설들을 아무리 다 따져봐도 늘 결론은 마음이 변했나? 로 가게 되는데, 연락이 두절되기 하루 이틀 전 대화, 카톡 내용을 아무리 되새겨봐도 마음이 변할 사람이 할 만한 말들이 아니었다는 생각의 끝에 도달하자 8월 언젠가쯤 학교 클럽에서 엠티 간다고 했던 말이 문득 생각이 났다. 그러자마자 또 꼬리를 무는 물음표들. 그런데 왜 이번 주말에 가는 거라고 미리 얘기를 안 해줬을까? 원래 바쁠 땐 연락에 신경 못 쓰는 사람이니 그러려니 해야하나? 만약 엠티간 게 아니라면?
별별 생각을 다하다가 이러다 내가 병이 나고야 말 것 같아서 결국 먼저 연락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먼저 연락한다는 행위에 그다지 거부감은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망설였던 이유는
'내가 여자친구도 아닌데, 겨우 이틀 정도 연락이 뜸하다는 이유로 서운함을 표시해도 될까?'
라는 생각과 더불어 뭔지 모를 애매한 관계 때문이었다. 두 달 넘게 이 애매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그래도 좋으니까- 고, 그 다음으로는 그 사람도 그래도 날 좋아하고 있구나- 를 어느 정도는 명확히 느낄 수 있어서-고, 또 그 다음으로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괜히 관계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꺼냈다가 소원해 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이 부분에서 '그래도'라고 써야 할 지, '그래서'라고 써야 할 지 약간 고민했지만- '그래도' 내 마음 속에 약간의 조급함이 있었는지 내가 건 전화를 엄청 반갑게 받으며
"나 엠티왔어" 라는 그 사람에게
"아... 여자친구 생긴 줄 알았네" 라고 해 버렸다. 이런 나에게 웃으면서
"왜 말도 안되는 이상한 소리를 하고 그래? 너 바보야?" 라는 말을 듣고 이틀 동안 겪은 심신의 고통이 말끔히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오늘 통화에서는 '여자친구'라는 단어를 언급한 것에 대한 반응이 무언가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오히려 내가 괜히 그런 말을 했나? 라는 생각만 들었다.
"내가 오죽하면 그런 생각을 했겠어" 라는 문장에 대해
"그러게" 끝.
얌전히 생각해보니 내가 여자친구가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만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 동안은 '몰라몰라. 여자친구인가봐' 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아, 여자친구가 아니구나?' 이런 상황. 함부로 해선 안되는 말을 함부로 뱉었다 싶다, 지금에서야. 그래서인지 앞으로 얼마간은 우리 사이의 무언가가 하향곡선을 탈 것 같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하고 그저 이런 상황에 대한 당신의 마음이 알고 싶네요. 내가 저 말을 했을 때, 그냥 "너 바보야?"에서 그치지 않고 "너가 내 여자친구자나!" 이랬음 얼마나 좋아. 센스가 없는거야, 마음이 없는거야. 아님 내가 정말 문자 그대로 오버하고 있었던 거야. 난 마음 없는 남자랑 매일 연락할 수 있는, 생각보다, 쿨한 여자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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