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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wing Pains

움직이지 않는 머리와 몸

특히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머리와 몸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보다 내게 주어진 일을 우선적으로 해야되다 보니 더욱 그런 것 같다. 물론 주어진 일의 범위 안에서 내 결정과 수행의 자유가 있지만, 그냥 나는 내게 주어진 그 일을 별로 즐기지는 않는 것 같다. 그냥 재미가 없어서 더더욱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가? 사실 이제는 내가 티칭을 좋아하나? 싫어하나? 라는 질문보다 자꾸 싫어한다고 생각해서 정말 싫어졌나? 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티칭을 꾸역꾸역 하면서 거진 1년을 보냈고, 컨퍼런스가 가득한 시기인 여름이 왔는데 문제는 별로 준비된 게 없다는 사실이다... 한창 연구할 시간에 강의와 논문 지도에 매여서 지냈으니 뭐 그럴만도 하다고 자위해 보지만, 그래도 별로 준비 없이 이런 저런 발표를 해야 된다는 게 토할 것만 같았다. 첫번째 컨퍼런스 가기 1시간 전까지도 침대에서 울고불고- 나는 못 할 거야 ㅜㅜ 나는 안 돼 ㅠㅠㅠ 내가 왜 한다고 했지 ㅠㅠㅠ?? 이러고 있다가 그래도 쟤 등록해놓고 안 왔더라 이런 말 듣기는 싫어서 진짜 죽으러 끌려가는 심정으로 기차에 올라탔다. 

 

기차도 타기 싫어서 이거 탔다가 저거 탔다가 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진짜 나 왜 그랬지...?? 내가 타야 할 기차는 정해져 있는데 왜 굳이 이상한 거 타서 갈아탔다가 뭐 이랬냐고....... 그 정도로 가기 싫었다는 것... 

 

도착해서 등록을 마치고 주위에 아는 사람들이 보였지만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빠져나와 호텔 체크인을 했다. 그리고선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을 집에서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gp 에 전화해서 처방전 가까운 약국으로 보내줄 수 있냐고 닥달하고 ㅋㅋㅋ 결국 안된다고 해서 온라인 프라이빗 닥터 시스템을 이용해 굳이 돈 주고 약 주문해서 걸어서 20분 거리의 약국에서 받아옴.... 오는 길에 맛있어 보이는 멕시칸 가게를 발견해서 브리또랑 또띠아 칩이랑 레모네이드 포장해 와서 먹으려고 하는데 ㅅㅂ....... 맥북 충전기를 안 가져온 걸 발견함 ^^^^ 

 

휴....... 

 

그 때가 벌써 저녁 8시였기 때문에 맥북 충전기를 살 수 있는 가까운 가전 제품 대리점은 다 문을 닫고..... 결국 우버 타고 15분 거리의 애플 스토어 가서 충전기 사왔다..... 음.... 애플 스토어가 주변에 있는 게 어디냐..... 없었으면 난 진짜 그 날 쳐 울고 기차 타고 집에 갔을 것.. 아무 것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며.. 

 

그렇게 수혈한 맥북에어로 새벽 6시까지 발표 자료 두 개를 만들어 놓고 플레너리 세션 및 원래 가려고 했던 세션 등 다 패스하고 오후 1시까지 자 버렸다. 내 발표가 3시부터였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진짜 머리 핑핑 도는 상태로 좀비같으 컨퍼런스 장을 배회했을 듯. 그래서 발표 장소까지 꾸역꾸역 가서 발표를 했는데..... 아니 사람들이 또 왤케 많이 왔는지 ㅜㅜㅜ ㅋㅋㅋㅋㅋㅋ 

 

다행히 하도 강의에 단련돼서 사람 많고 이런 건 이제 별로 긴장 안 되기 때문에 그냥 준비한 만큼 열심히 얘기했다. 질문도 많이 받고 좋은 토론도 할 수 있는 시간 이었어서 아 역시 오기 잘 했네- 하면 잘 하잖아- 라고 생각했던 시간이었음. 이런 건 그냥 내가 봐도 좀 미친 거 같아... 결국 저럴 걸 알면서 왜 하기 전에는 개미친지랄을 부리는지 시바 나도 나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냥 처음부터 열심히 그리고 여유롭게 준비해서 멘탈 붕괴 안 되고 더 좋은 퀄리티로 발표하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발표 끝나고 이번에 나온 책 사인회 갔다가 또 두 번째 발표 가고 ㅋㅋㅋㅋㅋ 두 번째 발표는 진짜 준비 하나도 못했는데 아니 ....... 왤케 다들 너무 좋다고 난리여 ..... 휴...... 붕괴된 멘탈을 보수하라는 의미에서 다들 좋은 얘기 많이 해주신 것으로 생각해야지... 

 

그리고는 결국 다음날까진 있다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마지막 날은 째고 집으로 와 버렸다. 영국에서 컨퍼런스 하니까 아무 때나 집에 와도 되는 건 너무나 좋았다. 비행기 시간 안 맞춰도 되고. 

 

그리고 집으로 와서는 또 다시 미이라 처럼 가만히 누워 있는 중. 데드라인이 미친 듯이 또 밀려들고 있는데.... 닥치면 또 할거면서 계속 미루면서 겁내 스트레스 받고 있는 중이다. 머리와 몸이 이렇게 움직이지 않는데, 나는 앞으로를 어떻게 살아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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