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아침마다 걷기를 시작한 이후, 어제부터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5일 정도 빠르게 걷기 연습을 하다가 달리니까 오랜만이었는데도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이틀간의 기록은 3.5키로 25분. 오늘 아침에는 밖에 나가기 싫다... 그냥 누워있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는데 나 자신을 이기고 나가서 달리고 온 나에게 치어스...★
달리고 집에 와서 확인해보니 일주일 새 1키로가 내려갔다. 이걸로 달리면서 했던 우울한 생각들이 조금은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마을을 달리다보니 작년 이맘때쯤 달리던 들판이 떠올랐다. 학교 운동장보다도 더 큰, 초록색 들판. 동네 개들과 신나게 달리다가도 몇 번이나 눈물을 쏟아냈던 곳. 그 때나 지금이나 큰 생각은 변함없다. 내가 뭘 하자고 여기서 혼자 이러고 있을까. 나는 왜 이렇게 달리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가. 그런데 지금은 이상하게도 눈물도 나지 않고 울컥울컥하지도 않는데 더 fragile해진 느낌이다.
누군가에게 조금만 의지하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이 의지하게 될 것 같고, 누군가와 얘기하기 시작하면 밤새도록 두서없이 무슨 말이든 쏟아낼 것 같고, 누군가가 나를 살짝만 건드려도 감정이 폭발할 것만 같은 위태로움이 느껴진다. 그런데 문제는 이 위태로움을 느끼는 건 게으름에서 오는 것 같다는 사실이다. 나는 왜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다 아마도 나는 이 상황에 너무 만족하고 있거나 너무 불만족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족이든 불만족이든 어렸을 때부터 자의로 꾸준히 해 온 일이 그다지 많지 않은데, 아마 이 4년이 끝나면 이게 내 자의로 꾸준히 한 최초의 일이 될 거 같다. 뭔가 나를 갈고 닦는 과정이라는 느낌이랄까. 나 자신을 이겨내야 한다는 심정이랄까. 사실 세상은 나를 그저 두는데, 내가 나를 눌러야하고 그런 나를 또 이겨내야 하는.. 어떻게 보면 싸움과 경쟁하는 과정의 반복이 조금씩 나를 성장하게 하는 건 분명하지만 이 과정이 쉬워지는 법은 절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재미있는 건... fragile해질수록 이걸 끝까지 놓지 않을 것 같다는 거. 내가 행복하고 풍요로우면 그걸 하러 떠나서 그 쪽에서 즐겁게 살면 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 잡을 게 이거 밖에 없기 때문에- 그리고 나 자신을 인정해 주면서 자존감을 살려주는 계기가 이거 밖에 없기 때문에 절대 놓지 않을 거 같다. (물론 행복하게 끝내는 분들도 많겠지유....??? 그럴 거라 믿어유 8ㅅ8;;;) 이런 생각까지 다다르니 어쩌면 새로운 걸 찾아 떠난 사람들이 더 행복한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도 들고... 최소한 정신은 더 건강하지 않으실런지.
아무튼 온갖 잡다하고 복잡하고 자잘한 것들이 머리와 마음 속을 어지럽히는 가운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달리는 행위는 fragile한 내 모습을 스스로 발견하고 '너가 잡을 건 이거밖에 없다' 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각인효과와 더불어 아침의 게으른 나를 이기면 오후의 게으른 나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근거없는 용기를 준다.
나는 지금 매우 약해져있다. 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시인한 것만으로도 난 큰 발전이라고 본다.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지, 그리고 과연 돌파해야만 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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