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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the UK

Manchester Pride - The Gay Village in Manchester


맨체스터에 도착한 17일은 Manchester Pride라고 불리는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커뮤니티가 주최하는 일종의 페스티벌이 열리는 날이었다. 영국 내 게이의 수는 2010년 기준, 전체 인구의 1.5%고 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런던, 브라이튼, 맨체스터 이 세 곳을 꼽는다. 그 중에서도 맨체스터 시내에 위치한 Gay Village는 위에서 언급한 Manchester Pride라는 이름 하에 여름에 약 10일 정도 여러가지 볼 거리를 제공하는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으며 전 세계 관광객을 맨체스터로 불러들이고 있는 대표적인 상업화된 게이 축제다. 

8월 25일, 토요일에 그저 인터넷도 신청하고 필요한 물건들을 사기 위해 나선 길에서 퍼레이드 행렬을 마주칠 수 있었다. 그 전날, 누군가가 함께 가자고 했을 때는 피곤할 것 같아서 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결국엔 이렇게 우연히 보게 되자 마냥 즐겁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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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가 시작되기 약 한 시간 정도 전부터 사람들이 이렇게 거리에 늘어서 있는데, 맨체스터에 도착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걸 처음 목격한 순간이었다. 게다가 게이 페스티벌이라 그런지 세련되고 예쁜 사람들만 잔뜩 있는 것만 같아서 그냥 집 앞 슈퍼 가는 복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던 나는 가방을 뒤적거려 선글라스로 신경쓰지 않은 티가 확 나는 비루한 얼굴을 가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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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리에서 퍼레이드 행렬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서 있을 수가 없어서, 행렬이 시작되는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로 했다. 약 20분 정도 걸었을까. 드디어 행렬의 머리에 해당하는 무리들을 만났고, 그들을 향해 보내는 환호와 박수는 생각보다 거대했다. 60세는 족히 넘어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퍼레이드에 참여한 모습을 보면서 이성애자로서 뭔가 슬프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 정말 행복해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오랜 시간 동안 그 누구보다도 주체적으로 살아왔을 그들의 인생에 경의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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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의 전당이라고 불리는 샌프란시스코 카스트로에서 우연히 경험했던 San Francisco Pride의 "Global Equality"가 굉장히 하드한 느낌이었다면, 맨체스터의 느낌은 굉장히 평화롭고 젠틀했다. 샌프란시스코는 밤이었고 맨체스터는 낮에 봐서 그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쨌든 샌프란시스코에서 내가 본 건 알콜과 대마의 향연이었다.


어쨌거나, 각 게이 커뮤니티의 이름이 새겨진 깃발이나 현판 등을 들거나 차에 장식하고 그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들이 함께 길을 행진하면서 퍼레이드가 펼쳐지는데, 위의 사진에 있는 The Co-operative Group이나, 아래의 Big Issue 깃발을 보며 "이 곳에 공부하러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The Co-operative Group이나 Big Issue 모두 영국의 대표적인 사회적기업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기업마다 기여하고자 하는 사회적 가치와 타겟은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기업"이라면 거시적인 관점에서 타 문화에 대한 이해와 공유, 연대 정신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기업이 이야기하는 "사회적 가치"는 주로 소수를 위한 것이고 차별받는 것이고 사회적으로 홀대 받았던 혹은 홀대 받고 있는 것들일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기업은 그 가치를 다듬어 새로운 것으로 혹은 더 나은 것으로 만들어 내고자 경제적 활동을 하는데, 그 작업은 우리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 또는 활동에만 사로잡혀 있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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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사회적 가치들은 서로 얽혀 있음에 따라 단 하나의 사회적 가치만 불균형하게 인정을 받는다던가 무시를 받는다던가 하는 일은 일어나기 힘들다. 이처럼 The Co-operative Group, Big Issue 모두 성정체성과 관련된 조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게이문화를 대표하는 축제에 참여하기로 한 것은 아마도 사회적기업이라는 정체성 하에, 다양한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이해와 포용력을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함으로써 덤으로 기업활동을 게이 커뮤니티에 홍보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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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타 기업 및 문화의 사회적 가치에도 신경쓸 겨를이 있는 것은 문화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그만큼 "사회적기업"의 활동이 영국에서 안정적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적응하기에 바빠서 내 연구 주제를 제대로 되돌아볼만한 겨를이 없었는데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친 퍼레이드에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점들을 발견할 수 있어서 기뻤다. 사람들이 "영국 가니까 좋은 점이 뭐야?" 라고 물어볼 때마다 할 말이 없었는데, 드디어 할 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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