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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wing Pains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조제를 처음 본 건 아마도 대학교 1, 2학년 때 억지로 끌려간 그 곳에서였다. 들어보지도 못한 제목의 영화를 본다는 건 그다지 끌리는 일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으로 보기 시작한 조제는 지금까지도 내게 잊을 수 없는 무언가로 남아있다. 


사실, 그 당시에는 뭔가 묘한 느낌만 가졌을 뿐 영화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해할 수 있을만큼 내가 성숙하지도 못하기도 했고. 헤어지자 말한 후 울음을 참지 못하고 쓰러져 우는 츠네오의 마지막 모습은 어렸던 내게 어렵기만 했다. 


그런데, 
얼마 전 문득 조제가 너무나 그리워져 다시 찾아보다 참지 못하고 중간에 보는 걸 포기하고 말았다. 왠지 모든 게 명백해진 것만 같았다. 


눈을 감아봐. 뭐가 보여?

그냥 깜깜하기만 해.

거기가 옛날에 내가 살던 곳이야.

어딘데?

깊고 깊은 바닷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왜?

너랑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하려고.

그랬구나. 조제는 해저에서 살았구나.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불고, 비도 안와.

정적만이 있을뿐이지.

외로웠겠다.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뿐이지.

난 두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꺼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질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 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두번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도, 데굴데굴할 것도, 그런대로 나쁘지만은 않으리라는 것도 알지만, 나는 조제만큼 약하지만, 조제만큼 강하지도 못해서 그녀를 이해는 하더라도 그녀처럼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알아버렸다. 


조제를 본 친구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엔딩이 너무 맘에 든다 
땅바닥에 풀썩
그리구 도망가는 그 남자애
마음도 이해가 되는 듯




도망간 게 아니야. 
그저 변한 것 뿐이야. 


라는 답장을 끝끝내 보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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