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옛 추억에 젖어들었어요. 뭐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의 중고등학교 시절은 매우 우울했답니다. 중학교 때는 사춘기를 격렬하게 보내느라.. 학교에서는 모범생 코스프레, 집에서는 약간 사춘기 소녀 코스프레.... 그리고 밖에서는 부모님, 선생님 모르게 별별 짓을 다 하고 다녔었죠. 생각해보면 .. 그렇게 심한 일들은 아니었고, 그냥 그 또래 학생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좋지 않은 '짓'들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다행스럽게도 나름 일반인 모드로 회귀한 것 같았지만 머리 속은 엄청 복잡했었어요.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았는지 모르겠네요. 우선 '한번 살아는 보자'는 일반인 또는 정상인 모드로 돌아왔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 자신에 대한 고민, 그리고 진로에 대한 생각들이 가장 많았던 것 같고, 아, 참고로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강하게 염두에 두고 있었던 장래희망은 영화감독이었습니다. 고 3, 5월 정도에 약 6년 동안 가지고 있던 영화감독에 대한 꿈을 버리고 급 선회를 하긴 했지만, 지금도 이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네요.
어쨌든 당시 영화와 책에 미쳐있던 저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문예부에 가입하게 됩니다. 이 문예부도 예사롭지 않아서 진지할 땐 진지하지만 평소에는 개그 동아린지 뭔지 정체성이 불분명한 그런 모임이었어요. 요즘에는 이상하게도 지금보다도 더 훨씬 어렸을 때의 기억들이 자꾸만 나고, 마치 생을 정리하는 사람처럼, 혼자 웃음짓게 되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 갑자기 그 때 제가 썼던 글들이 보고싶어지고 말았어요.
급하게 넘겨받은 시 몇 편만 살짝 공개합니다.
2001년, 고1 문학소녀 Growing 作
<진짜 진실은>
누구나 가진 자신을 닮은 눈.
그들에게는 겉모습과 쉽게 보여지는 것만이
나라는 사람이다.
행복이라는 궤도 안에서
안정권으로 비춰지는
나의 진실을 담은 눈이
이제는 주치의를 필요로 한다.
앞에서 밝혔다시피 전 항상 모범생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으나 속은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ㅋㅋㅋㅋ 저를 항상 활달하고 밝고 재밌고 착실하고 고민 따윈 없어보이는 발랄한 소녀로 평가하는 게 전 죽을만큼 싫었어요. 정말로. 이 시는 누가봐도 이제는 나의 진실한 모습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고 염원하고 있네요.
<사평역에 앉아>
겨울의 사평역
그들은 자신의 창으로 세상을 본다
그로써 아픔을 느끼며
낯선이의 눈물을 나눈다
막차를 기다리며
꺼져가는 불빛에 희망을 던진다
나의 창은 작고 어려
불빛을 바라볼 수 없지만
막차가 지나간 자리에서
첫차를 기다리며
언젠가는 그들의 희망까지
볼 수 있기를
곽재구의 <사평역에서>에서 영감을 받고 썼던 듯 합니다. 딴엔 오마주-_-라며.... 열심이었죠. 이상하게도 <사평역에서>는 저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어요. 꾸며진 것은 없지만 진솔하고 솔직하게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느낌이었죠. 왠지 그 시를 읽을 때면 항상 내가 그 공간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정말 그런 느낌으로 <사평역에 앉아>라는 제목을 붙이고, 정말 내가 그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상황을 가정하고 썼던 시 같네요. 사평역의 사람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그래도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역시 이기적이게도.. 내가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되겠다도 아니고 그들의 희망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썼네요 (ㅎㅎ). 어떻게보면 엄청 겸손해 보이기도 하지만, 자기 중심적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군요.
<그날은>
신선한 초록 시원한 붉음을
담고 싶은 날이었다
밝음은 어느 때보다도 붉었고
그가 주는 졸음조차도 얼마나 행복했던가
언제나처럼 순간의 만족
행복은 순간이어야만 했다
끊임없는 외로움과
인내하게 하는 따뜻한 떨림 속에서
나는 광주에서 그의 마지막 선물인
그것을 그해 처음으로 베어 물고 있었다
미소짓는 그와 눈물을 삼키며.
문집의 이 시를 읽고 가족 중에 누군가가 알아챘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정말 잘 따르던 아빠 친구 분의 사망 소식을 접한 후 쓴 추모시 입니다. 제 주변에서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한 건 처음이었고, 정말 사랑하고 존경했던 분이기에 그 충격은 더더욱 강했던 것 같아요. 그 후로 몇 년 동안이나 이 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항상 이불을 흠뻑 적셔야만 했으니까요. 시에서 나타내려고 했던 '그것'은 수박이었어요. 수박을 정말 좋아하는 저는.. 그날따라 너무 더워진 날씨 때문에 계속 '수박 먹고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정말 즐거운 일도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마도 다른 고등학교 축제에 다녀오고 쇼핑도 하고 그런데 이상하게 엄마는 아무 연락도 걸어 오지 않아서 마음놓고 신나게 놀았던 날이었어요.
하지만 그런 즐거운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저는 사망소식을 접해야만 했고.. 바로 광주로 내려가야만 했었어요. 그리고 그 장소에서 저는 '수박'을 마주했답니다. 하루종일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던 수박... 그렇지만 이런 곳에서 먹고 싶지는 않았는데... 왠지 하루 동안의 소원을 아저씨가 이루어주고 떠난 것 같아 먹지 않을 수도 없었답니다. (우리 엄마는 수박을 잘 사주지 않았었거든요.) 에... 괜히 이런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다 밝혔나. 추모시의 아이템이 수박이라니... 써놓고보니 왠지 없어보이네요.
<눈썹>
절제의 의미로써의 의지가 되어주고
날카로운 심들이 사납게 번뜩거려도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절대'라는 힘 있는 음성이
지배하는 바로 그 날부터 였다.
후에 그 음성에서 벗어나게 되는 날.
내 다른 길을 걷게 할 때에는
전혀 망설임 없이
가장 먼저 너를 버리리라.
당시 "눈썹"을 공동주제로 모든 부원이 시나 산문을 작성하는 코너가 있었어요. 눈썹으로 뭘 쓸까... 고민하다가 탄생한 '저항시' 입니다. ㅋㅋㅋ 당시 저희 엄마는 눈썹을 절대 못 건드리게 했어요. 친구들이나 미용실에서 언니들이 예쁘게 다듬어준다고 해도.. 안그래도 인상이 쎈 애가 날라리같이 보일까봐 걱정하셨던 엄마. 엄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날, 바로 그 날엔 눈썹부터 밀어버리겠다는 의미심장한 반항의 의지를 담은 저항시 입니다. 고등학생답게 귀엽네요 ㅎㅎ
2002년, 고2 문학소녀 Growing 作
1학년 시절엔 다작하는 소녀였던 것 같습니다. 2학년으로 올라오면서 흥미가 없어진건지.. 아니면 더 이상 글빨이 따라주지 않았던건지.. 읽을만한 게 별로 없네요. 우선 시작하는 말이 이렇게 우울합니다 -_-
공식적인 나의 열여덟은 끝났다.
가장 즐겁고 행복했다고 느낀 내 나이..
이기적인 시간은 나를 제치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
나만의- 비공식적인 열여덟은 나의 영원히 ?? (안보임-_-)
나의 기쁜 ...
열여덟이라는 나이에 환상이 있었던 소녀는 열여덟에게 안녕을 고하면서 무지 슬퍼했던 것 같네요. 하지만 지금 누군가가 나에게 열여덟로 돌아가라고 하면 절대 안가.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새를 동경하는, 자유의 날개와
아름다움의 깃털을 부러워하던 어린아이에게
새는 영원할 수 없었다.
단 한 순간이었다. 성미 급한 어미새가
아이를 실망시킨 것은.
그 새는 하늘로 날아가려다
투명한 하늘에 부딪혀
새끼와 날개를 동시에 잃고 말았다.
새는. 그의 자유로움을 자유로 돌리지 못한 죄로
지금까지도 아이에게 미움을 받는다.
당시의 저는 과연 'Freedom is not Free'의 의미를 이해했었을까요? 모든 사람에게는 '자유'로 통하는 새의 의미가 저에게는 오히려 공포였고 억압이었어요. 그래서 나온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Freedom is not Free와는 다른 의미로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는 걸 의미하려고 시도했던 듯 하네요.
<암시하다>
난 사실 눈물이 많다. 정확히 말하자면 울고 싶을 때가 많다. 사소한 감정에 빠져 슬퍼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눈물을 보이지는 않는다. 어쩌다가 눈치 없는 이 놈이 눈 아래로 빠져나오려고 해도 정말 끝까지 참고야 마는 나다.
난 행복한 가족들도 있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부담도, 언제 죽음이 올까라는 걱정도 없다. 흔히 동료라고 불리는 사람도 없기에 그들과의 불화도, 사랑이라 불리는 아픔의 경험도 없다. 어른들의 세계에 진입하는 순간 느낀다던 성공에 대한 두려움도 아직은 없는데...
하지만, 그래도 참을 수 없을 만큼 슬퍼져 눈물이 보일 때는 눈에 먼지가 들어갔다고 나 자신에게 한심한 변명을 하는 뻔뻔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울음, 눈믈.
그리고 내 나이. 난 아직도 아버지를 아빠라 부르는데...
나는 내 나이의 눈물이 부끄럽다.
처음으로 짧고 짧은 산문이 등장합니다. 산문이라고 부를수나 있으려나요. 시가 아닌 글이 등장합니다. 이 때 뭔가 시 쓰기 엄청 귀찮아했던 듯. 위의 '눈썹'과 마찬가지로 '눈물'이 공동주제였던 듯 하네요. 뭔가 매우매우 유치하지만 솔직한 글입니다. 이 시기부터 함축적인 단어들을 사용하는 걸 싫어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시 쓰던 버릇을 못 버려서 제목에서 보다시피, 이 글을 통해 무언가를 '암시'하고 싶어했던 듯 한데... 뭐였을까요?? 너무 쉽다.
2학년 때 쓴 글들은 하나같이 초라해보여서 여기까지만.
오랜만에 어렸을 때 썼던 글을 보니까 감회가 새롭네요. 다음 번에는 일기장을 찾아볼까나.
당시엔 내가 글을 엄청 잘 쓰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까 ... 음 그냥 딱 그 나이 또래의 여자아이였던 듯. 조금 더 우울한 아이긴 했지만.
1학년 문집의 시작글을 이렇게 썼더라구요.
이 글들을 쓰기까지 상당히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글을 쓸 때 이렇게 조심스럽게 써 본 것은 처음 이라지요-
저의 고등학교 일년 생활은 상당히 즐거웠습니다.
모든 것이 말이죠.
물론 잃은 것이 더 많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제게 있어서는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고나 할까요.
과거는 사람을 아프게도 하고 행복하게도 합니다.
미래의 나는 2001년의 과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그때 역시 행복할까요?
저 때 잃은 건 아마 좋은 성적, 그리고 선생님 또는 부모님의 관심과 기대였을 겁니다. 지금은 마냥 귀여워보이지만 그 때는 그래도 나름 중요한 문제였겠죠. 지금의 저는 과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지금의 전 역시 행복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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