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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wing Pa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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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4년차에 접어든 랩탑을 포맷하고 나니 "지금까지 포맷을 왜 망설였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속도도 빨라지고 소음도 사라졌다. 게다가 생각보다 내가 애지중지하며 깔아두었던 프로그램도 별로 없었다. 지금까지 난 단지 3년동안 생산해 둔 수많은 파일들을 외장하드에 옮기기도, 이것저것 양껏 설치해두었던 쓸데없는 프로그램들을 다시 설치하는 과정도 귀찮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무거운 머리와 감정들 사이에서 내가 지내온 시간과 기억들도 깨끗하게 포맷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모든 것들을 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작이 어려운 것 뿐이지 막상 내 머리 속(?)도 포맷하고 나면 그렇게 소중할 것도 반드시 기억해야만할 것도 별로 없을것만 같다. 오히려 비어있는 그 공간들을 채워줄 새로운 기억과 시간이 내 삶에 또다른 신선함을 가져다주지는 않을까. 물론, 그 과정 역시 프로그램 재설치처럼 귀찮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터널 선샤인이 그랬듯이 지워도 지워도 남는 기억은 존재한다. 사실 컴퓨터 역시 포맷 과정을 거쳐도 이런저런 데이터 복구 과정을 거치면 살아남는 것들이 몇 개 있지 않은가. 삭제. 기억. 복구. 


처음 이 글을 시작할 때는 정말이지 내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완전히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했다. 그런데 그런 첫 생각과 달리 나에게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그것들을 과연 다시 살리지 않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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