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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wing Pains

내 안에 잠재하고 있던 욕망이 표면으로 솟구칠 때, 호모 에로스 - 고미숙 그리고 루쉰의 편지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 고미숙, 그리고 루쉰의 편지



만행에 부는 고미숙, 그리고 연애 관련 독서 트렌드에 저항하지 못하고(OTL) 선택한 호모 에로스. 게다가 샘솟는 "어른연애"에 대한 갈증을 이기지 못한 탓도 크다. 여기서 어른연애란 대상에 연연해 하지도, 휘둘리지도 않고 자기자신을 오롯이 세우고 서로 인정하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능력이 되는 배포가 큰 관계. 어렸을 때의 연애는 그만큼 열정이 있기도 했으나, 질투, 불안함, 외로움, 두려움, 이별에 대한 걱정 등등 많고 많은, 정신과 신체에 해로운 감정들 역시 함께 존재했다. 사랑과 연애는 행복해야 한다. 즐거워야 한다. 그런 성숙한 연애를 하고 싶은 나의 감정이 담긴 언어가 바로 "어른 연애"다. 힘들여 번 돈 여기저기 아무 어른들처럼 흩뿌리고 다니는 연애를 말하는 게 아니라. 


호모 에로스에서 말하고 있는 바는 내가 생각해 왔던 "어른 연애"와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듯 하다. 많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겪어온 연애경험에서 느낀 바들, 그리고 앞으로 다시 그런 시간이 찾아온다면!? 에 대해 생각해 왔던 바와 비슷해서인지 이미 이 책을 읽은 이들이 던지는 찬사만큼의 감동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비판하면 비판했지. 



연애는 '대상'의 문제가 아니다!!?? 


내 생활과 대화, 그리고 관계의 중심은 항상 나 자신에 있다.고 믿는다. 이젠 지겹도록 많이 한 말, 바로 이기적인 인간이다. 그런데 내가 말하는 이기주의는 괜찮은 이상형을 만나 '사랑'이 아니라 '사귀'고, 그리고 괜찮은 '사랑'이 아니었다 믿으며 '후회'나 '복수'나 일삼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모든 선택은 나로부터 나온다. 나는 나를 사랑하므로 이러한 선택들은 최소한 나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그러므로 연애는 '나'의 문제임이 확실하다. 

그런데 연애는 '대상'의 문제이기도 하다. 연애는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관계는 '나' 혼자서 '잘'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상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일상의 배치를 바꾼다'해도 넘치고 넘치는 대상 중 연애의 대상을 만나는 건 사실상 어려운 일이며, 설사 만났다 해도 정신적인 교감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조건 및 상황은 직접 부딪혔을 경우 무시하기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시공간적 배치 속에서 사랑이라는 특별한 감정이 생기고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시절인연'이라는 말로 모든 만남, 그리고 연애의 관계를 포장하는 것은 비약이다. 내쪽에서 바라보면 저 사람은 분명 내 '시절인연'인 것 같은데 상대쪽에서 바라보면 나는 '시절인연'의 대상이 아닐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내 안에 잠재하고 있던 욕망이 표면으로 솟구치는 사건"이 한 쪽에만 일어났다는 사실만으로 그건 인연이 아니라고 말하기엔 너무 쌀쌀맞지 않을까!? 

사실 책에서는 대상의 문제에 대해 정확히 언급하고 있지 않으며, 심지어 저자마저도 이에 대해 헷갈리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아니면 내가 잘못 이해했거나, 애초부터 대상의 문제란 도대체 무엇인지 서로 간에 공통된 정의 없이 글이 전개되었기 때문일수도 있다. 저자는 연애는 '나'의 문제라고 말했다가 사랑이라는 걸 대상의 문제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가 내 몸과 소통하는 힘에 비례하여 상대에 대해서도 알아차릴 수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대상의 문제만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게 대상도 어쨌든 고려해야 된다는 건지, 아니면 오로지 나의 문제인지, 그리고 상대에 대해서 알아차리는 건 대상의 문제가 아닌건지 등이 분명하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모두모두 대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오랜만에) 분명하지 않은 언급들에 (오랜만에) 짜증을 낼 뻔 했다. 도대체 그래서 어쩌라고 ... 

어쨌거나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사랑은 분명히 나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대상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 한 줄로 간단히 말할 수 있는 걸 이렇게 길게 쓰다니!



집착은 불행!? 


사랑하는 '대상'에게만 신경을 써 불행해지는 경우는 종종 있다. '집착'이라는 단어로 이를 설명할 수 있을까. 집착이라는 감정이 피어나면 언제나 불행하기만 한 걸까. 호모 에로스에서는 충동과 열정을 다르게 구분한다. 충동이란 내가 통제할 수 없어서 늘 중독적 상태로 치닫는 힘이기 때문에, 내게 엄청난 쾌락을 주기는 하지만, 그 원인은 늘 외부에 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죽음 충동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에 반해 열정은 충동의 완전한 반대라고 한다. 아무리 뜨겁게 솟구친다 해도 삶의 의지와 연동되어 있어서 절대 중독되지 않으며, 충동이 존재 전체를 불안으로 요동치게 한다면, 열정은 '유래 없는 평온'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집착은? 집착은 그 단어 자체로는 굉장히 부정적인 느낌이지만, 집착 없인 열정도 없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개인적 취향이지만, 집착적인 관계를 선호하는 편이다. 미칠 정도로 강한 집착 말고! 앞서 말했듯이 자아가 존재하는 집착을 선호한다. 상대방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집착이라는 감정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런 감정들은 때때로 관계에 있어 확신과 즐거움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 않는가!? 사랑에 꼭 확신이 있어야 하나? 상대는 집착이라는 감정 때문에 괴로운데 나는 즐거움을 느껴도 되나? ... 따위의 말은 제발 하지 말아주길. 확신은 있어야 한다. 확신이 없으면 불안하다. 그런 불안한 마음은 스스로를 괴롭히고 관계를 흔든다.  



You are so cool !?


주위를 둘러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최근에 등장한 주류적 콘셉트는 '쿨한' 연애다. 절대 빠지지 말고, 적당히 즐기다가 깔끔하게 이별하는 것, 치고 빠지기. 그게 쿨의 대략적 의미다. 한마디로 감정을 끈적하게 낭비하지 말자는 거다." 

그럴 듯 하긴 한데, 이런 연애는 정말 '쿨한' 연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열정이 '평온'을 선사한다면 쿨한 연애는 열정적이어야만 한다. 쿨하다는 말은 보통 감정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미로 여겨지겠지만, 정말 쿨함은 오히려 감정에 충실한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열정적일 때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떠날 때는 누구보다도 가볍게, 물론 그렇다고 이별의 아픔을 느끼지도 않아야 된다는 건 아니다, 아픔도 아픔 그래도 받아들이는 게 오히려 감정과 자신에게 솔직한 거겠지. 

정말정말 솔직히 말해서 이런 게 정말정말 쿨한 거 아닌가? 그러니까, 우리 쿨한 젊은이들은 (20대라고 쓰고 싶었지만 30대 청춘들이 혹 슬퍼할까봐 ... ) 감정을 끈적하게 낭비 좀 해 봐도 될 듯. 



연애의 이론, 그리고 실천


이경이 남긴 말. "호모에로스가 연애의 이론을 말하고 있다면, 루쉰의 편지는 마치 그 실천편 같다." 루쉰의 편지는 루쉰이 연인인 쉬광핑과 함께 나눈 연애편지의 모음집이다. 해설이 정말 식빵(...)같아서 읽는 내내 해설편을 뛰어넘는 수고를 감수해야하긴 하지만, 편지 그 자체를 읽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연애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루쉰과 쉬광핑이 살던 시대상황은 몰라도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어느 시대든 굴곡과 어려움은 있기 마련이니까. 그저 그런 것들을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헤쳐나가는가를 보고 느끼면 된다. 루쉰의 편지를 읽는 내내 괜히 즐거웠던 까닭은, 상대방에 대한 내 감정이 어떤지 굳이 구구절절 블라블라 쓰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에서 그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 제 3자인 내가 읽어도 두근두근한데 당사자 끼리는 도대체 어땠을까를 생각하니 정말 "루쉰같은 남자를 만나는 것만이 길이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기까지 했다. 

루쉰은 봉건사회의 관습에 따라 쉬광핑을 만나기 전에 이미 결혼한 몸이었다. 아무리 진보적인 사상가라 했을지라도, 관습을 깨뜨리기 싫었던(?) 혹은 두려워했던(?) 그는 아내와 살갑게 지내보려 했지만 도무지 가능하지 않았다. 무슨 말만 하면 "그렇네요. 그렇군요." X 100000 번을 하니, 도저히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쉬광핑을 만나 자유로운 사상의 공유가 이루어지며 자연히 사랑에 빠지게 된 것. 이후 결혼이고 뭐고 (...) 그냥, 감정이 시키는대로 끌리는대로 쉬광핑과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 
 


그래서 결론은 끌리는 대로 사랑하고 연애하면 된다. 우리시대 연애가 어쩌고 저쩌고 ... 만행에서도 나온 얘기지만, 우리시대 연애가 뭐 어때서!? 사회와 인식의 변화에 따라 연애하는 모습에도 변화가 있겠지만,,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는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 연애에도 방법론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게 시간낭비 감정낭비 밀당이랑 뭐가 다른가. 그냥 "연애"라고 생각하기 전에 어떤 일이나 관계에 있어서건 감정에 솔직하게 반응하고 진실하게 대면하면서 살아가면 안될까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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