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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the UK

심장 터져나가던 날


허..... 이런 심장 터질듯한 기분은 오랜만이었다. 처음 유학와서 발표할 때 몇 번 그러다가.. 이젠 발표도 좀 익숙해져서 무덤덤하게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갑자기 강의를 하라는 지도교수의 연락에 진짜 심장이 미친듯이 두근두근. 




준비할 시간은 하루 밖에 없었는데, 그냥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오려나- 싶어서 덜컥 하겠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가 진짜 심장 터지는 줄... 나중에 알고 보니 영국애들이라면 거절했을거라고들 하는데.. 나같은 애들은 그런 거 상관없음 ㅋㅋㅋㅋㅋ 오는 기회는 죽이되든 밥이되는 그냥 오는대로 다 잡는 스타일.. 허허허허




런던의 강철멘탈님과 급하게 버거와 맥주를 흡입하며 언니의 경험 + 조언을 들으면서 마음을 기껏 다잡았는데... 기차에서 강의 준비를 하지는 못할 망정 완전 폭풍 수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 나란 인간.... ㅠㅠㅠ 




결국 집에 와서 밤새 슬라이드 준비하고... 리허설은 해보지도 못하고 잠들었다...;;;; 아니 한국어 강의가 아니잖아... 영어잖아... 게다가 여기서 처음으로 하는 건데 ㅠㅠㅠ 이렇게 무방비하게 잠들 수 있는 건지.. 내가 나를 봐도 정말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3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서 전날 만든 슬라이드를 보는데 왜 또 그렇게 개판인지 ㅠㅠㅠ 수정하는 동시에 무슨 말 할지 머리로 입으로 겁내 미친여자처럼 연습하고 ㅠㅠㅠ 정신을 거의 어디다 둔 사람처럼 ...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학교로 감. 




다행히도 교수님이 무슨 내용 강의할건지 슬라이드도 봐주고 대충 얘기도 들어줘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내용도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었다는... 근데 역시 듣던대로... 강의 시간은 30분 남았는데 갑자기 어떤 내용은 수정하고 어떤 내용은 추가하라고 하라는 지시를 내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ㅠㅠㅠ 님은 그게 가능하겠지만 전 쩌리라서 그게 어려운데여.. ㅠㅠㅠ 속으론 멘붕이었지만, 앞에서는 "오~~ 그런 얘기 당연히 추가할 수 있지~~ 슬라이드 없어도 그 정도는 말할 수 있지~~~ㄹㄹㄹ" <- 표리부동한 인간...... ㅠㅠㅠㅠㅠ 


그 이후로 어떻게 어떻게 강의실까지는 들어갔는데... 왜 또 극장형이야 강의실이 ㅋㅋㅋㅋㅋ 나 진짜 미치는줄 ㅠㅠㅠ 너무 큰 극장형 강의실이라 완전 긴장 뽝 하고;;;; 한 시간 반 정도 우리 교수가 하는 강의를 먼저 듣는데, 역시 듣던대로 ㅋㅋㅋ 처음엔 집중하고 듣다가 나중엔 무슨 말 하는지 안 들림. 머리속으로 혼자 리허설하고 있음 ㅋㅋㅋㅋㅋㅋ 쉬는 시간에 교수는 자꾸 나보고 괜찮냐고, 정말 괜찮냐고, 잘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고.... 괜히 나 긴장 풀어주려고 너 네일 어디서 했냐, 직접했냐, 어떻게 했냐 물어보고 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신경써주는 게 더 긴장된단 말이예요 ㅠㅠ 


아무튼 그렇게 강의를 시작했는데, 음.... 막상 시작하니 별로 안 떨리고 그냥 술술 말이 잘 나왔다, 다행히도. 근데 아마 콩글리시 작렬했을거임.... 내가 생각을 하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말을 해야되니까 하는거다.. 이런 느낌으로 블라블라댔기 때문에 ㅠㅠㅠ 



그리고 강의 시작 전엔 애들이 질문하면 어떡하지, 질문을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못해주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들이 많았는데 막상 질문이 없으니까 이것들이 잘 못알아듣고 있나 ㅠㅠ? 내가 어렵게 말하고 있나 ㅠㅠ?? 내용이 재미가 없나 ㅠㅠ???? 이런 걱정들을 하던 와중에 질문이 쏟아져나와서 아... 다행이다 싶었음 ㅎㅎㅎㅎ 


강의 후에도 몇몇이 와서 따로 질문도 하고, 메일이 와서 만나서 더 물어보고 싶다고 하고... 그래서 뭔가 떨리고 정신없었지만 보람있고 오.. 나 또 뭔가 새로운 일을 했어....?? 한 발자국 이 세계에 들어온거야....???? 이런 일종의 감격을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집에 와서 쓰러져서 12시간을 내리 잤다 ㅎㅎㅎ 


교수는 강의 후에도 그랬지만 다시 한 번 메일로 데뷔를 축하한다며.. 진짜 잘했다고.. 내가 몸둘바를 모를 정도로 과분한 칭찬을 해줘서 무지 기뻤지만 부담스럽기도 하고 ㅠㅠ <- 이건 내가 진짜 잘했다기보다 우리 교수 스타일이 이러함... 정말 잘못하지 않으면 쓴소리 잘 안하고 거의 늘 부둥부둥 칭찬해주고 기 살려주는 스타일. 


근데 그런 스타일인 거 알면서도 기분이 너무 좋아서 오글거리는 내용을 메일로 보내버렸다. "교수님께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기 위해 더 노력할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한국어로 쓰면 별로 안 오글거리는데 왠지 영어로 이런 말하고 감사를 표시하는 건 남사스러운 느낌;;;;;; 이지만 그냥 너무 과분한 칭찬을 받아서 나도 좀 오버 해서 답장을 보내버림 ㅎ_ㅎ;;;;;;;; 



아니 뭐... 우리는 서로 남사스러운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처음 교수가 학교 옮길 건데 같이 가자! 했을때 당연히 가겠다고!! 그러면서 왜냐하면 난 당신을 잃기 싫으니까....(I don't wanna lose you.....) 라고 했던 여자가 바로 나...ㅋ......... 심지어 이건 메일도 아니고 전화 통화하면서 직접 고백함.... ㅋ....... 


아무튼.. 하 너무 흥분해서 글을 썼는데, 그만큼 뭔가 긴장되고 산 하나를 넘은 느낌이라.. 그리고 영어권에서 강의를 잘 할 수 있을지 반응은 어떨지.. 이런 걸 시험적으로 검증해 봤다는 의미가 있어서 좀 흥분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듯.. 교수 강의하는 모습 보면서 아.. 난 정말 아직도 멀었다 ㅠㅠ 저렇게 수업을 리드해가려면 얼마나 더 읽고 공부하고 생각하고 말해야 할까 ㅠㅠ?? 라는 생각 때문에 overwhelmed 했지만 그러니까 더 열심히 해야겠지.. 라는 생각으로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있다. 


빨리 이 기분을 가라앉히고... 아님 이 기분을 발판 삼아 페이퍼를 써야지 ㅠㅠ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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