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 in the UK

필드워크 이후의 소고


필드워크를 명목으로 6개월 동안 한국에서 지냈다. 거창하게 소고라고 할 것 까지도 없지만 그냥 현재 가지고 있는 단편적인 생각들을 늘어놓을 필요는 있을 것 같아서... 



6개월의 시간이 너무나도 빨리 지나갔다. 사실 필드워크 자체는 3개월이었고 3개월은 그냥 여름 방학을 한국에서 지낸 것 뿐... 그래도 어쨌든 시간이 너무 빠름. 한국은 모든 것이 빠르고 만날 사람도 많고 신경쓸 것도 많아서 재미있고 심심할 틈이 없기도 하지만 그 반면 조용히 앉아서 읽고 생각하고 쓸 겨를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중간 쯤 되니..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되는걸까? 하는 걱정에 빨리 영국 가고 싶다- 라는 생각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돌아오고 나니 역시 매일 뭘 먹을지 고민하는 것부터 힘겹다. 



필드워크를 잘 한걸까? 라는 생각도 사실 많이 든다. 총 40명 정도를 인터뷰 했고.. 어느 순간 부터는 인터뷰 해달라고 컨택할 때마다 그런 주제라면 나 말고 이 사람을 만나보세요 - 라고 하는데 그렇게 추천받은 사람들이 다 이미 만난 사람들이라, saturation에 다다른 걸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그렇게 책에서 아무리 saturation, saturation 해도 역시 직접 부딪혀서 깨닫는 수 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앞서 말한 것처럼 나름 saturation에 도달은 했지만 이걸 가지고 얼마나 좋은 논문을 쓸 수 있을까 두려워진다는 게 함정...... 


더 다른 질문들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모르는 다른 사람들이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들이 반복이 되어서 스스로 필드워크 결과를 평가하라고 하면 글쎄..... 잘 모르겠다. 물론 교수 앞에선 내 필드워크 완전 짱이었음. 완벽함 ㅋㅋㅋㅋ!!!! 이렇게 어필하겠지만 ㅠㅠㅠ;;;;;; 하다보면 부족함이 계속 발견되고 다시 해야겠다, 더 만나봐야겠다..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듯 하다. 우선은 있는 자료를 예쁘게 잘 다듬어 봐야지... 



걱정되는 것 외에도 인터뷰 하는 동안 아이디어들이 마구마구 샘솟아서 힘이 되어주기도 했다. 논문에서 다룰 내용들 뿐만 아니라 이후에 어떤 연구를 추가적으로 할지.. 어떤 분야를 더 아울러서 공부해야 할지, 계속 관찰을 해야할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무지 좋았음. 이런 개인적인 재미와 흥미를 고조시킨 건 너무 좋은데.. 반대로 이런 거 해서 한국에서 잘 먹고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 허허허. 


필드워크 하면서 이해가 안 되었던 부분 중 하나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인데 자신들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그것만 봐도 이 분야가 정의나 개념, 분류 등이 잘 정립도 되어 있지 않고 서로서로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채로 그냥 잘 나가는 몇몇 조직이나 개인에게만 찬사를 보낸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그런 걸 목격할 때마다 어쩔 수 없는 특성인건가? 싶기도 하고 내가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아니면 적응해서 살아야 하는걸까? 라는 여러가지 질문이 들어서 마음이 이래저래 복잡했다. 몰라.. 우선 논문을 쓰고 나면 또 다른 생각이 들겠지.



지금까지는 워밍업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제 자료 정리와 분석, 라이팅업에 들어가야 되는데 무섭다. 잘 할 수 있을까? 얼마나, 어느 수준으로 잘 해야 하는걸까? 그 시간을 잘 견딜 수 있을까? 


그래도 2년 간의 시간이 아주 헛되지는 않았던 것 같은 게... 지난 2년 동안은 이런 두려움이 엄습해 와서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약간은 즐길 수 있을 정도의 무게감만이 느껴진다. 아직 제대로 시작을 안 해서 그런가........ ㅋㅋㅋㅋㅋㅋㅋ 



새로 이사한 곳은 더더더더더 완전 깡촌이다. 이 동네에서 걸어다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는 느낌..일 정도로 차 없이는 다니기 힘든 동네;; 어제 산책 중에 만난 할머니도 젊은 사람이 이런 동네에서 어떻게 살려고 그래? 라고 걱정 해줬을 만큼..... 벽촌으로 와 버렸다 (눈물눈물). 


자전거 고쳐야 하는데 추워지면 자전거 타고 잘 다닐 수 있을까. 차를 사고 싶은데 ㅠㅠㅠ 돈이 없어서 못 산닼ㅋㅋㅋ 내 주제에 사치는 무슨....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걸어 다녀야지... 허허허 


닥치고 공부만 하라는 계시인 것 같기도 하고.... 아직은 나쁘지 않다. 시골이라 그런지 지금까지 살았던 곳 중에 집도 제일 좋은데 값은 싸고... 어차피 학교도 자주 안 가니까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잔디깎으러 감. ㄱ







'Life in the U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몹쓸 존재  (0) 2014.11.26
개똥을 밟으면 운수가 좋다?  (2) 2014.10.10
벌써 3년!  (2) 2014.06.26
오랜만에 미팅을 마치고  (0) 2014.06.25
애증의 빨간 줄  (0) 2014.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