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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wing Pains

일상, 그리고 홍상수




사무실에서 혹시 홍상수 좋아하세요? 라는 말을 꺼냈다가 넌 애가 왜 그런 걸 좋아하니? 와 비슷한 말을 들었다. 요는.... 굳이 인생의 어두운 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소한 면까지 영화를 통해서 나타내어야 하는가, 혹은 보아야 하는가 라는 불쾌함, 그리고 굳이 그러지 않아도 사는 건 충분히 꾸질꾸질하다는 것이었다. 그에 대해 '어차피 다 그렇잖아요, 사는 게' 라고 대답한 나는 10살이나 어린 게 참 빤질빤질하구나 ... 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었을것만 같다(-_-) 게다가 오늘은 듣고 있던 음악에 대해 '넌 참 알면 알수록 취향이 독특하구나' 라는 말을 같은 분께 들었고 ... 


우선 난 내 취향이 그다지 독특하다 생각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부터 그런 말들을 많이 들어 지친지 오래기 때문에 별로 그런 것들을 내색하지 않고 은둔하며 살아왔는데... 사무실에 취향이 비교적 비슷한 단 한 분! 그 한 분!이 계셔서 근무시간 중 음악공유와 취향 및 의견 공유의 즐거움을 쏠쏠히 느끼고 있다. 덕분에 방심했는지 당당하게 '홍상수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을 큰 목소리로 해버리고 말았다는. 난 단지 그 한 분!의 의견이 궁금했을 뿐인데 내 취향 혹은 성향이 독특 혹은 이상하게 느껴지는 약간은 피해왔던 상황을 마주하게 되어버렸던 그 순간. 그치만 어쨌든 나와 다르거나 관심없는 무언가는 아예 신경을 안쓰는 나로서는 오랜만의 색다른 반응이라 재미있긴 했다...........


각설하고 덕분에 '왜 홍상수가 싫지?'라는 질문이 자꾸만 머리 속에 떠오르는데 그렇다고 내가 그의 광팬인 것은 아니다. 실제 제대로 본 영화는 생활의 발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극장전, 그리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끝. 그런데 미처 보지 못한 영화라 해도 하나같이 제목마저 내 취향이라 제목에 끌려서 나중에 확인해보면 감독이 홍상수인 경우가 많았더란 말이지.. 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강원도의 힘과 오,수정!의 '제목'이 주는 알 수 없는 매력에 빠져 그 영화들을 미치도록 보고싶어 했었더랬다. 물론 나이 제한 때문에 보진 못했고 지금까지도 그러지 못하고 있지만 홍상수 감독과는 왠지 감각이 잘 통하는 느낌이랄까 (나 혼자서). 


그런데 이러니 저러니 해도 홍상수가 '마이너'인 건 그의 영화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일 거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현실도 찌질한데 영화마저 그래야 하겠냐는 반감 때문일까 아니면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일까. 


예전에는 '누구나' 찌질하게 - 예를 들어 겉과 속이 다르다거나, 허례허식을 좋아한다거나, 친구의 아내를 탐한다거나, 가지지 못할 것 같던 여자를 가진 후 마음이 변한다거나 - 살고 있지만 자신의 그러한, 윤리적, 사회적으로 온당하다 여겨지지 않는 부분을 인정하기 싫어한다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영화가 자신의 인정하기 싫은 부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면, 더더욱 싫겠지. 그런데, 사실은 나와 비슷한 삶의 모습이 예술작품을 통해 그려질 때 그 모습은 바로 나이기 때문에 절대 찌질해 보이지 않거나, 찌질하다고 인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지 않나.


얼마 전, 책 특히 문학작품을 읽는 이유에 대해서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으니까'라고 대답하는 건 말도 안되는 이유라고 혼자, 내멋대로 결론을 내려버렸다. '공감'이든 '반감'이든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느끼지 않았다면 생길 수 없는 반응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명 마이너, 인디라고 불려지는 문화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공감 또는 반감을 얻고 있다고 한다면, 그 외의 사람들이 이에 대해 '무관심'한 이유는 이것들이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사건 혹은 감성을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결국 홍상수 영화가 '일반 대중'으로부터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사실 대부분이 특정 사건을 겪고 싶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겪어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있어 어둡고 마주치고 싶지 않은 면은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홍상수 식의 찌질함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결론이 또 내 멋대로 나왔다.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우울하고 어둡게 살아가고 있거나 말거나 내 알바는 아니지만, 아무튼 난 홍상수가 좋고, 홍상수 식 찌질함이 그다지 찌질해 보이지도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찌질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일상 그 자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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