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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wing Pains

그렇게 하지 않아도 너를 사랑해



제발 우리에게 화내지 말아라. 설사 우리가 없더라도 너는 똑똑한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겠지만, 만일 우리가 없다면 도대체 누가 너를 사랑하겠니? 

그렇게 때문에 가족의 사랑은 부도덕해요, 어머니. 그것은 어떤 행위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니까요. 사랑은 행위에 의해 얻어야 합니다.

차차 그렇게 해서 얻으면 되지. 그렇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모두가 너를 사랑해. 


- 도스토예프스키, 미성년 上, 열린책들, pp. 459-460



가족이라기보다 부모가 자식에게 쏟아내는 사랑은  때때로 굉장하다. '혈연'이라는 것으로 묶여있다는 사실만으로 부모는 자식의 삶 또는 생활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끝없이 사랑한다. 어쩌면 원초적이라 할 수 있는 이 사랑은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부도덕하기도 하다. 바로 어떤 행위에 의해 얻어진 것이 아닌, 말하자면 거저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주는 사람보다는 받는 사람이 느끼는 '부도덕함'이 더 강할 것이다. 


최근 '난 정말 부도덕한 사랑을 받고있구나...' 라고 느낄만한 상황이 생겨버렸다. 요는 앞으로 혼자 떨어져 살 내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를 부모님이 해결해준다는 거다. 지금까지 부모님 돈을 아예 안 받아 온 건 아니지만, 그리고 돈으로 사랑을 논하는 것도 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어쨌든 생각이 부모라는 존재가 없었더라면 지금까지 내가 원했고 원하는 모든 상황들을 어떻게 충족시켜 왔을지까지 미치자 과연 나는 독립적으로 살아왔는지에 대해 스스로가 무기력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았음에도 항상 받아왔고 앞으로도 한동안 그럴 것이라는 생각에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과연 나는 그러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 하고. 


이런 식으로 나를 부끄럽고 받는 행위에 회의적으로 반응하게 만드는 부도덕한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써는 다른 길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이를 (어쩌면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 정말이지 철도 버릇도 없이 왜 내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거야! 라며 부모를 탓해보기까지 이르렀다.물론 다 부질없는 것이, 난 실제로도 무기력한 존재이므로.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가족의 사랑 뿐만아니라 어떤 사랑이라도 행위에 대한 보답에 의한 것은 아니며 보답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물론 우리는 사랑을 주었을 때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받기 원하겠지만, 보답을 받기 위해서, 또는 그 사람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주는 행위'를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설사 그렇다해도 우리는 사랑을 할 때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사랑한다.>


이러한 사랑은 반드시 부모 자식간 혹은 종교적인 내리사랑이어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소위 세속적이라 여겨지는 사랑조차도 어떤 행위에 의해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정말이지 피곤하다. 어떤 행위로 인해 사랑의 정도가 심화될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랑은 만들어진다기보다 생겨나는 것이므로.


그런데 부모로부터의 사랑과 연인으로부터의 사랑의 큰 차이가 있다면 바로 '부도덕성'에 대한 반응에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정리해보면, 행위에 의해 얻지 않은 사랑은 부도덕하다. 그런데 가족, 부모로부터의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우리는 부도덕함을 느끼나, 주로 이를 당연시하거나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긍정해버린다. 이 과정에서 사랑을 받는 이가 느끼는 부도덕함은 그 정도가 희미해진다. 그런데 연인으로부터 받은, 행위에 의해 얻지 않은 사랑에서 우리가 부도덕함을 느낄 때 우리는 이를 과연 당연시하게 되는가? 게다가 나는 비슷한 정도의 사랑을 줄 수 없거나, 어떠한 행위로도 보답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이를 어쩔 수 없다고, 그냥 이대로 좋다고 느끼는가? 아마 대부분의 경우엔 죄책감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이것이 끝을 앞당기지는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연애에서는 누구도 부도덕함과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쌍방향 통신, 그리고 감정과 행위의 조절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감정을 가지고 장난치는 밀땡이 아니라, 관계의 지속성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말이다. 물론 이게 어렵기 때문에 누구나, 언제나, 헤어짐을 가정한 상황을 설정하고 실제로 그런 과정들을 겪고 있겠지만. 그러니까,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사랑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