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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나 글쓰기 버튼을 눌렀는데 계속 날라가고 말았다. 자동으로 저장이 되는 줄 알았는데 안 되는 모양........ 왜 난 지금까지 자동 저장이 된다고 알고 있었을까. 아무튼 그렇게 조금씩 써 놓은 글을 세 번 정도 날려먹고 오늘은 어떻게든 쓰고 싶은 말을 다 쓰고 발행 버튼을 눌러보고자 다시 시작했다. 뭐 물론 그 전에 어떤 내용을 작성하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대충만 기억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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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시작한 이후로 학생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영국 사회의 단면을 꽤나 많이 직면하고 있다. 지내면 지낼수록 정말 정 없고 차갑고 남을 착취하며 부를 쌓는 사회라는 생각이 참 많이 든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적절한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정적 지원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긍정적 결과를 낳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이들의 의사결정 방향은 늘 어떻게 하면 얘를 좀 더 싼 값에 잘 부려먹을까- 라는 사실을 절절하게 깨달은 6개월이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이런 문제들도 빙산의 일각이고 풀타임으로 일하다보면 내가 겪은 것보다 더 한 상황을 마주하게 될 때가 많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이게 빙산의 일각이라니요.......... 도대체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그저 영국 사회에서 외국인으로써 잘 자리잡고 surviving 하고 계신 분들께 존경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을 뿐....
집에 갈 때가 되면 정이 떨어진다던데 그게 맞는 말인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집에 가고 싶어서 있던 정 없던 정 다 털어내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렇게 한국을 떠나고 싶어했는데 아무래도 내 나라니까 또 가면 잘 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가서 완전히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정말 마음이 심란하고 복잡하다.
얼마 전에 한 번 엉엉 운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건 나를 못살게 구는 영국 때문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들이 나를 못살게 굴어도 영국 때문에 운 적은 없었다. 그들이 괴롭히면 괴롭힐 수록 어디 한 번 갈 때까지 가보자 하고 더 악에 받치기 일수였으니까. 나를 정말 울게한 건 나의 과거였고 또 과거의 나를 기억하는 부모님이었고 또 아마도 두고 온 한국이었다. 엄마와 올림픽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저 행사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을까. 정말 사람 갈아넣어가며 준비했을 거다" 라고 했는데, 엄마가 "어디가서 그런 얘기 하지 말고 희망적인 모습만 봐라" 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는데, 나는 정말로 이 말 때문에 너무나 우울해졌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난 참 특이하다, 다르다/틀리다, 주장이 강하다, 이기적이다.... 이런 평을 많이 들었었다. 친구들 또는 선생님들에게 받은 저런 평가 때문에 나는 집에 오면 참 많이 혼나야했고 내 앞에서 서럽게 우는 엄마의 모습을 봐야했다. 물론 엄마는 나에게 저런 코멘트를 한 선생에게 전화해 싸우기도 한 것 같았지만, 엄마 스스로도 저런 평가에 흔들리진 않았던 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내 딸은 이기적이지 않고 착하고 배려심이 깊은 아이라 믿었으며 또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듯 하다. 또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 스스로도 언제부터 좋은 아이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고 있었다.
솔직히 난 내가 그들의 기준에서 얼마나 특이했는지, 달랐는지, 주장이 강했는지, 이기적이었는지 잘 모른다. 오래된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끝내면 니가? ㅋ 하고 너 평범하니까 발 닦고 자라- 라는 식이고 중학교 땐 그냥 늘 이러다 죽었으면 하고 바랐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과 그다지 활발한 교류가 있는 편도 아니었다. 그나마 내가 예측할 수 있는 건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그 또래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더 자아가 강했던 거 밖엔 없다. 그래봤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난 왜 태어났는지 난 왜 행복하지 않은지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난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이런 걸 생각하고 적었을 뿐인데, 돌아오는 대답은 - 너는 너무 쎄. 너는 너무 의견이 강해, 너는 너를 좀 더 죽일 필요가 있어.
그래서 나는 언젠부턴가 내 의견을 말하지 않기 시작했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너도 옳고 쟤도 옳다 라는 식의 말을 많이 하고는 했다. 그래야 착하고 배려심이 깊고 다른 사람들이 어울리고 싶은 사람이 되니까.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늘 나를 관용적이고 포용력있고 활발한 사람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정체성이 영국에 와서 정말 조각조각나는 경험을 했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 라는 식의 의견 제시를 하면, 너는 왜 명확한 너만의 생각이 없어? 라는 코멘트를 받기 일수였다. 토론이 중심이 되는 영국 교육의 시스템 속에서 나는 주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이 되었고 실제로 그러했다. 내 주장을 말하기 전에 어떤 내용을 말해야 미움받지 않을 수 있는지 늘 생각해야 했으니까. 미움받아도 된다. 나는 그냥 내 논지를 잘 정리해서 논리적으로 말하고 또 증명하면 된다, 누군가가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걸로 그만이다, 라는 마음을 먹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직도 내 가슴 속 한 부분은 늘 미움받기 싫다고 생각하고 상처받기 싫고 또 상처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고 논리로만 이야기를 나누어도 될만한 상황에서도 움츠러들고 또 움츠러들 때가 많다.
어떤 주장의 옳고 그름을 하나하나 다 따져가면서 스스로의 논점을 강화해나가는 식의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정말 힘들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인간인지 그대로 직면해야 됐으며, 또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고 또 부지런히 그 논지를 발전시켜 나가야 하니까. 그러면서 그 동안 한국에서 "자아 지우기" 식의 교육을 많이 받아왔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조해 주어야 하고 비판하면 그 비판의 내용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는 게 아니라 행위 자체에 대한 공격을 받는 사회. 솔직히 그게 살기엔 더 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냥 다른 사람이 사는대로, 사회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따라 살아가면 되니까.
그런데, 다시 엄마의 말로 돌아가자면, 나는 아직도 내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고 있는 엄마로부터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눈에 보이는 표면 뒤, 가려진,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싫어한다- 라는 게 엄마의 논조였는데, 정말 어릴 때 겪었던 일들이 서른이 넘어서까지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눈 앞이 아득해졌다. 그것도 난 그냥 한 마디, 정말 한 마디 가볍게 했을 뿐인데. 진짜 얘기는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왜 내가 가장 가깝다고 느끼는 엄마와의 대화에서까지 내 생각을 검열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내 의견/발언 때문에 나를 싫어할지 좋아할지 고민해야 된다는 게 정말이지 헤어나올 수 없는 깊은 구덩이에 빠진 느낌이었다. 그만큼 절망적이었다. 우리 엄마가 유독 그런 시선에 예민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 봤지만, 그 예민함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며 누가 만들어낸 것인가를 생각하면, 내가 정말 한국에서 잘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거듭 하게된다.
그 동안 열심히 지워두었던 자아를 열심히 다시 그려놨는데 이제 다시 지우라면 못 지운다는 걸 안다. 또 한국에 간다고 해서 예전처럼 내 자아를 다시 지울 필요도 없고, 이미 그런 인생의 선상에 있지도 않고, 또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가 나를 마음에 들지 않아한다면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난 아직도 미움받을 자신이 완전히 없는 건지, 아니면 우리 모두 서로 비슷해져야한다 라는 강력한 사회적 합의를 얼마나 거스를 수 있을지 모르겠는 건지, 그 곳에서 내가 그저 나 자체로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참 많이도 없다.
20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은 인생에 중요한 순간이 올 때마다 지겹게도 떠오르고 떠오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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