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는 가기 전에는 미칠 거 같은데 다녀오기만 하면 좀 안심이 된다. 그래도 내가 뭔가 조금이라도 무엇인가에 기여를 하고 있구나 - 라는 느낌 때문인 걸까. 아니면 누군가가 내가 하는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관심있게 들어주기는 하는구나 - 라는 생각 때문인 걸까. 아무튼, 올해에도 역시나 새로운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의미있는 토론도 많이 하고 늘 마음에 담고 있던 이야기들을 조금씩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왔다.
그래서인지 컨퍼런스 다녀오니 그 동안 우울했던 감정들이 좀 사라진 것 같고 그르네여? 좀 사람이 다시 활기차 지고 뭘 해야겠다는 의지도 생기고 좀 그랬으요. 그래서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무려 2주간 답장하지 않았던 이메일들을 모두 읽고 답장하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또 일들이 차곡차곡 앞으로 진행될 힘을 쌓아가고 있고, 내일은 또 새로운 이메일들을 써야 한다. 뭔가 망해가는 일들도 분명히 있긴 한데..... 최대한 죽어가는 숨결을 살려봐야지 ㅠㅠ
박사과정은 정말 깊은 트라우마를 남기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이게 끝난 지 2년 전인데도 아주 최근까지도 내 목소리를 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도 그런 마음이 그다지 강력한 건 아닌데,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걸 보면서 아 나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라는 생각, 그런데 왜 죽어있는 사람의 마음처럼 살았을까? 라고 되돌아보니 뭐 많은 이유가 있지만 결국엔 박사하는 과정이 가장 트라우마틱 했던 것 같다는 결론.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런데 넌 왜 그래?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예... 저는 그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 사람도 제가 아니고요?? 그냥 나는 이랬다고...
인터넷에서 해외 이민을 고민하고 있는 특히 비혼 여성들을 보면, 한국에서 여자로 사는 게 나을까 영어권 국가에서 이민자 여자로 사는 게 나을까 고민하는 것 같던데, 둘 다 그렇게 큰 차이가 있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아무리 여자라도 모든 사람들이 나를 한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주는 곳에서 사는 게, 철저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 또 그 사실을 깨닫는 게 생각보다 알게 모르게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나를 되돌아보면 그랬던 듯. 여기선 아무도 나한테 오지랖 떨지 않으니까 나를 나 그대로 받아주는 사회라서 좋아!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아무도 나한테 관심도 없고 애정도 없어서 그런 거라고 얘기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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