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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the UK

최근 의식 속 부스러기들 1


너무 오랫동안 글을 안 쓴 거 같아서 오늘은 한 번 글쓰기 버튼을 눌러봤다. 요즘은 그냥 집-도서관-운동으로 이루어진 단조로운 삶을 살고 있다. 처음에는 도서관에 가서 앉아 있어도 100 중 20 정도 밖에 공부/집중이 안 됐는데 이제는 한 60 정도까진 올라온 것 같다. 사실 그 정도까지 올라온 것도 내 노력에 의한 건 아니고 할 일이 많아지다보니 그렇게 해야만 해서 그렇게 된 것 뿐이다. 읽을 게 많다보니 처음엔 매일 같이 가지고 다니던 랩탑도 집에 팽개쳐두고 다니고 학교에선 A4 뭉텅이들만 눈 앞에 있어서 자연히 그저 읽는 것 밖에 하지 않게 된다. (물론 가끔 애니팡은 한다.) 


그런데도 여기에선 이상하게 시간이 정말 빠르게 간다. 하루에 하는 일은 정말 먹고, 자고, 씻고, 공부하고, 운동하는 것 정도 밖에 없는데 아침 8시에 일어나도 금새 밤 11시가 되어 버린다. 퀄리티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데드라인 못 맞추는 걸 좀 치욕스럽게(?) 생각하는 나는 데드라인이 걸린 날이면 밤 새기가 일쑤다. 한동안 밤 새는 것도 체력이 딸려서 못 했는데 최근 몇 개월간 지겹도록 운동을 해서인지 원래도 좋던 체력이 더 좋아져서 진정한 All-nighter가 되었다.


요즘도 꾸준히 일주일에 적으면 두 번, 많으면 세 네 번까지 운동을 가고 있는데, 또 다시 이상하게도 배가 나온다. 먹을 게 별로 없고 또 밤에 스트레스 받으면 탄수화물들을 마구마구 섭취하기도 했고 짐에 가는 시간 말고는 계속 앉아만 있어서 그렇기도 할 것이다. 게다가 밖에서 사먹는 게 해먹는 거에 비해 현저히 비싸다보니 외식을 하는 날이면 무조건 배가 터지도록 먹은 이유도 있다. 불규칙한 생활, 간헐적인 폭식이 복부 지방을 증가시킨 것. 앉아 있는 건 어떻게 해결할 수가 없는 문제니 쉬는 시간에 틈틈히 스트레칭을 하고 식이를 다시 엄격하게 조절하기로 했다. 빵이나 씨리얼, 과자, 유제품 등 군것질 거리를 안 먹은지 일주일이 되었는데 배와 몸무게가 여전하다. 그동안 여기 와서 또 얼마나 쌓았다는 걸까. 지겹다. 


살찌는 게 너무 싫다. 중학교 때 까진 날씬한 애였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살이 급격히 쪘다. 대학가면 저절로 빠진다던 살은 찐 정도의 반 정도 밖에 빠지지 않았고 열심히 운동해서 다시 날씬한 체격이 되자 일과 공부를 병행한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마구 먹어서 다시 살이 쪘다. 그리고 정말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힘들게 배우고 식이를 힘들게 조절해서 다시 어느 정도 정상 체중으로 돌아왔는데 또 다시 살이 쪄서 배와 허벅지에 지방이 가득한 몸으로 사는 건 상상만 해도 정말 지겹다. 


미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나의 경우 살이 쪘을 때 더 체력이 떨어지고 더 게을러지고 자신감도 없었던 것 같다. 뭐 그것보다 우선 몸 모양을 좀 만들고 나니 그냥 삶이 달라진 느낌이었다. 목표한 대로 마음먹은 대로 '나는 이렇게 할 수 있는 인간이었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 예전처럼 '살 빼야 하는데...' 생각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해 자책하는 일이 없어져서, 그리고 앉았을 때 뱃살이 접히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어쨌든 요지는 난 앞으로도 계속 철저하게 식이조절하고 운동을 하겠다는 거다. 지난 두 달 간 몸에 쌓은 탄수화물과 지방을 빨리 컷팅하고 싶다. 


요즘 철학 수업을 필수코스로 듣고 있는데 미친듯이 빡센데 미친듯이 재밌다. 어렸을 때 철학과에 진학하는 게 꿈이었는데 누구나 그렇듯이 점수 맞춰서 가다보니 그러지 못했다. 사실 철학/심리학과에 원서조차 못 냈는데 일반적인 한국인 부모님을 둔 사람이라면 그 이유를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하루 종일 서양철학의 흐름을 읽고 주요 이론과 그에 대한 반박, 비판들을 읽으면서, 역사에 남은 위대한, 시공간을 초월한 철학자들의 문헌을 통해, 철학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Research Question', 'Hypotheses'를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열강하시던 한국에 계신 우리 교수님이 떠올랐고, 교수님이 왜 그 논리구조를 그토록 강조하셨는지 이유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철학자들이 서로의 철학에 대해 반박하는 모양을 보면 참 말장난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말장난이라 여겨질수도 있는 아주 조그마한 조건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에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그 큰 차이를 깨달아봤자 세상 살아가는 거 뭐 달라지나 그런 생각 역시 들지만 자신의 주관적인, 그리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이론을 구축해나가고 또 선행연구를 받아들이(거나)고 반박해야하(거나)는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최근 집중해서 읽은 부분은 흄의 경험주의에 대한 포퍼의 동의와 논박인데 '귀납'과 '연역'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도 시간이 엄청나게 걸렸다. 원문으로 두 번 읽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한국어 번역본을 한 번 읽고 해설해 놓은 문서들을 몇 개 찾아 읽고 원문을 다시 읽었는데도 미심쩍은 부분들이 남아있다. 어렸을 때 읽은 '논리야 안녕'에서는 이렇게 어렵게 설명하지 않았는데 '귀납'과 '연역'에 대한 논의와 역사가 이렇게 복잡하고 길 줄이야. 아직도 이해 안되는 부분에 대한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흄이 반박한 합리주의를 읽어야할 것 같고 합리주의를 또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리스 철학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아 너무 무겁고 너무 빡세고 너무 많은데 그냥 무조건 다 읽고 최대한 소화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사실 이 수업은 많은 애들이 많은 리딩과 머리를 많이 굴려야 한다는 점 때문에 싫어하고 또 귀찮게 생각하는 수업인데, 난 나 스스로도 무조건 필요한 수업이라 느껴질뿐만 아니라 지도교수님과 선배언니가 강추하면서 '2년 후에는 왜 이 수업이 가치가 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라는 말에 따라 선생님 말씀은 잘 듣는 한국 학생의 특성을 발휘하여 묵묵히 읽고 있고 또 계속 그럴 예정이다. 근데 진짜 ㅈㄴ 어려워 ㅅㅂ 하....


쓰고 싶은 게 많은데 졸리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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