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건강하게 지낸다 싶었는데 6개월만에 또 병이 났다.
편도염. 한동안 편도가 잠잠했는데 지난 겨울에 심하게 감기를 앓고 난 이후로 또 다시 말썽이다. 지난 겨울에 아팠을 때는 밤새 기침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자는 상태로 두 달을 보냈는데도 병원에서 자가치유하라며 죽어도 항생제를 안 줬는데, 이번엔 바로 주더라. 아플 때마다 맨날 GP 가서 항생제 좀 줍쇼 구걸구걸했는데 이번처럼 쉽게 받아낸 건 또 처음임. 그만큼 증세가 심각했다는 거겠지. 근데도 의사가 물어보더라, 그래도 이틀 정도 더 버티다가 먹을래? 아님 오늘부터 먹을래? ㅅㅂ.... 사람이 진짜 죽을 거 같은데 항생제를 먹는 건 온전히 너의 선택이고 책임이라며 이틀 후에 먹겠냐고 물어보는 건 뭔지..... 지금도 호전이 안 되었는데 의사 말에 혹해서 이틀 더 기다렸으면 나 진짜 죽을 뻔 했다.
꼭 항생제를 받아내야겠다는 마음에서 병원 가기 전에 집에서 편도 상태를 체크했는데 완전 새하얀 고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이건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되는데, 할 수만 있다면 주사기나 칼 같은 걸로 째서 고름이랑 피를 내버리는 상상을 한다. 그러면 좀 덜 아프지 않을까 싶어서. 한국에선 링거 한 번 맞으면 금방 맞는데, 맨날 자가치유 자가치유를 외쳐대는 영국에선 죽기 직전이 아닌 이상 그런 건 절대 기대할 수 없고 항생제를 받은 것만으로도 감동받아 무릎꿇고 욿었다...... 이제 난 살았구나... 하고.
항생제랑 해열제를 마구 들이켰는데도 4일이 지난 지금 크게 차도는 없다. 고름은 많이 없어졌고 몸 아픈 게 덜하긴 하다. 그래도 기침에 두통에 순간순간 열이 심하게 올라오거나 뚝 떨어져서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하다. 그나마 몸 상태가 조금이라도 괜찮을 때 한 두시간이라도 책상에 앉아있을 수 있는 상태는 되었다. 약 이틀 정도만 먹으면 이 정도 상태까지 회복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회복이 이렇게 더딜 줄이야. 약은 앞으로 3일 더 먹어야 하는데 그래도 정상궤도로 들어서지 않으면 다시 병원에 가야 한다.
이렇게 아픈데도, 약만 먹으면 바로 긴 잠에 빠지는데도, 중간중간 논문 생각에 벌떡 벌떡 일어나곤 한다. 8월 말에 교수한테 보내야 하는데 아직도 디스커션 챕터가 완성이 안 되었기 때문..... 게다가 파인딩 챕터도 다시 손 봐야 하는데, 현재로선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한두시간이라 뭘 논문을 건드릴 수가 없다. 푹 쉬고 빨리 나아서 집중해서 하자고 생각하는데도 압박감에 약기운을 이겨내고 밤마다 꼭 잠에서 깨고야 만다. 어쩔..... 아픈데도 뭐 링거투혼- 이런 거 할 생각은 전혀 없고 단지 완쾌해야지만 일을 다시 시작할 예정인데도 이건 뭐 진짜 수명 깎아먹으면서 아무도 시키지 않은 짓을 왜 이리 하고 있담........ 때때로 이런 현타가 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가장 큰 현타는 혼자 아프고 혼자 이겨내야 한다는 사실이고. 아플 때마다 정말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냥 엄마가 보고싶고......... 엄마 끌어안고 자고 싶고 막 그럼. 하지만 현실은 엄마 걱정할까봐 아프다는 말도 못했다. 대신 지난 번 아팠을 때 엄마가 꼬박꼬박 챙겨먹으라며 보내준 도라지즙과 흥삼액을 꺼내고 꾸역꾸역 먹기 시작했다. 진작에 엄마 말 듣고 미리미리 좀 먹을걸 ㅜㅜㅜㅜㅜ 후회하면서. 집에 가기전까지 받은 홍삼액 꾸역꾸역 다 먹고 아프지 말아야지.
혼자라는 사실이 더럽게 서러워서 그런지 한식마저 먹고 싶어졌다. 일년에 김치 먹는 횟수가 진짜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인데, 한인마트에 가서 거의 2년만에 처음으로 종가집 맛김치를 한 팩 사 왔다. 어묵볶음도 사고 치킨까스도 사고 김도 사고 라면도 샀다. 국물이라도 뭐가 있어야 될 것 같아서 라면을 반 만 끓였는데 반의 반도 못 먹고 버렸다. 막상 먹으면 잘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끓였는데 이젠 정말 라면을 못 먹는 몸이 되었음을 느낌. 대신 어묵볶음, 치킨까스, 김, 김치는 현미밥이랑 야무지게 먹었다. 그렇게 두 끼를 먹고 소고기를 사다가 미역국을 한 솥 끓여서 또 오늘 두 끼를 먹었다. 내일 두 끼도 미역국과 김치로 떼울 예정이고 또 반찬을 사다 놓으려고 한다..... 진짜 밥솥도 사용한지 정말 오래 되었는데 왜 아프니까 그렇게 밥이 먹고 싶고 한국식 밥상이 그리운지 ㅠㅠㅠ 먹다 미역국에 눈물 떨어트리는 줄. 으헝헝.
내일이면 좀 더 많이 나아 있기를. 8월도 다 갔다. 빨리 나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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