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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the UK

결정을 내리는 순간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 순간이 나에게도 올 것이라는 걸 이상하게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냥 내 인생이 늘 그랬듯이. 물 흐르듯이 이루어지겠지. 뭘 해도 하겠지. 라고 막연히 생각만 하는 습관의 연장이다. 딱히 살면서 언제쯤엔 뭘 하고 뭘 하고..... 이런 플랜을 세워본 적이 없고 그것을 통해 성취감을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냥 오늘 좋은 일이 일어나면 그걸로 좋은 것, 이라고 생각하는 게 나다. 


근데 이제는 뭐랄까 진짜 멀리 보고 어떤 결정을 내리면 좋을지 생각해야 하는 시간들이 다가오고 있다는 게 몸으로 느껴진다. 이젠 어디서 살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가 - 라는 질문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에는 어제 미팅에서 교수가 포닥자리가 있다며 어디께를 소개해 주었는데, 내가 설정해 둔 최소한의 바운더리인 "영어권 국가"에는 속하지만 뭐가 낯선 곳이라 정말 그런 곳에 가도 되는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난 정말 거기 가서 살 수 있을까? 맨체스터에서 좀 더 남쪽으로 내려온 이후엔, 맨체스터에 다신 못 돌아가겠다고 천 번도 더 넘게 생각했는데, 정말 생각도 안 해 본 저 곳에 가서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뭐 아직 오퍼를 받은 것도 아니고, 막상 담당 교수가 날 뽑지 않을 수도 있으니 너무나 이른 고민이긴 하다. 하지만 비슷한 고민들을 앞으로 약 3-5년 간 계속 수십, 수백번은 해야할텐데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이번 기회를 통해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영어권 국가이기만 하면 괜찮은가? 학교 랭킹은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는지? 비자, 연봉, 그 외 대우 등 계약 조건은? 그 곳에 가서 향후 내 미래 커리어에 도움이 될만한 점이 무엇이 있나? 깡시골에 가서 살 수 있나 (지금도 시골이라....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도시에 좀 가고 싶다....)? research area, interest를 어느 정도까지 설정할 것인가? 최대한 광범위하게? 최대한 좁게? 같이 프로젝트를 할 교수는 누구인지? 잘 지낼 수 있을지? 이후에도 날 많이 도와줄지? 등등등 


대충 생각해도 뭐 이런 건데 지금 당장도 대답할 수 있는 게 ....... 거의 없다;;;;;;;;;; 쩝........ 한번도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아서... 


뭐 이제 진짜 학생을 벗어나야 하는 시기구나. 진짜 커리어의 시작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두근두근하고 좋다. 




이런 고민이 나오게 된 가장 중요한 배경은 


논문 풀 드라프트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ㅋㅋㅋㅋㅋㅋㅋ 정식 제출이 아니라 교수에게. 


어제 셋이 단란하게 앉아서 프린트한 논문 붙잡고 엉엉 드디어 드라프트가 나오다니 엉엉 감동이다 수고했다를 연달아 몇 분 동안 얘기했다는. 


물론 첫 드라프트라 고칠 부분이 많고 추가해야 될 부분도 많지만, 스트럭쳐와 리서치 퀘스쳔, 그리고 주요 컨드리뷰션과 디스커션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피드백을 받아서 넘나 기쁘당.......... 허허허허허허허허 


아무리 그지같은 풀 드라프트라도 없는 것보단 낫다는 말이 뭔 말인지 이제서야 알게되었다. 수정할 게 그래도 꽤 많아서 부지런 부지런 떨어야 최종 데드라인에 맞출 수 있을 듭!!! 부지런 떨자 부지런 부지런!!! 


아무튼 이렇게 드라프트가 나왔기에 교수가 이젠 잡 서칭을 허락해 준 것이지요..... 직접 물어다주기도 하고. 


일단 되는 대로 지원은 다 해 볼 예정이다.... ㅎㅎㅎㅎㅎ 


앞에서 나열한 질문의 고민이 아예 필요없는 경우의 수는 : 그냥 우리 학교에 남거나 + 런던으로 가거나. 아님 최소한 잉글랜드 남부라던가. 


그럼 확실히 고민의 폭이 좁아질 것 같음. 



그래도 일단은 교수가 날 챙겨주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감사한다. 박사 끝나도 나 그냥 내팽겨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또 한시름 놨다. 어디라든 낑겨 넣어줄거라는 믿음. 



마지막 제출까지 힘내고 곧 경제적으로 어른이 되는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길 바란다, 미래의 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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