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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the UK

향수병이 나았읍니다 - 친구 방문과 제이미 올리버의 Fifteen


향수병으로 고생하던 지난 두 달. 그렇게도 싫어하던 눈 내린 한국 풍경 올리며 좋아하고, 히드로 공항에서 인천 가는 비행기 보며 뭉클해지고, 감기 때문에 고생하는 동안 엄마 아빠를 떠올리며 눈물 흘리던 지난 날들...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 한 번 다녀오지 그래? 향수병 아냐? 라고 안부를 묻던 지난 날들. 


그렇게 지독했던 향수병이 나았읍니다. 


대학친구가 영국을 방문하여 하루 종일 같이 다니고 맛있는 거 먹고 수다 떤 것 만으로 말끔히 나았읍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어휴. 진짜. 집을 한 번도 그리워해본 적이 없는데 지난 두 달은 진짜 집에 갈까 ㅠㅠ??? 잠깐이라도 한 번 다녀올까 ㅠㅠ?? 라는 생각만 가득가득했다. 그래도 논문 마무리 하고 가야된다는 생각으로 꾹꾹 참고 있었는데 친구 방문으로 속이 좀 시원해짐. 


지난 달에 영국에서 알게된 분이 한국에서 오셔서 만났을 때에도 물론 재밌고 좋았지만 향수병이 낫는 느낌은 전혀 없었는데, 역시 한국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가 오니까 마음이 사르륵 풀어져 버리는 것. 딱히 나 때문에 온 건 아니지만 와주어서 고마워, 오랜 친구여 ㅠㅠㅠ 그다지 한 것도 없고 버거 먹고 템즈강 따라 걷고 테이트모던에서 프리가이드 투어에 참가하고 펍에서 맥주를 마시고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풀코스 식사를 하며 수다 떤 게 전부. 


완전 영국스러웠던 날씨. 


여기에 한국 친구도 없기에... 한국어로 소리내서 수다떤지가 오래되어서 막 신나게 떠들고 싶은데 내 마음처럼 말이 안 나왔다. 버벅대고 표현도 이상하고... <- 한국어 원어민 맞고 유려하게 말 한다고 생각하는데, 하도 수다체를 안 쓰다보니 말 하다 버퍼링 걸릴 때가 꽤 있음.. ㅠㅠ 나도 그러기 싫은데 왜 그러는지 모를. 나 원래도 이렇게 말 못했나 궁금할 정도. 영어랑 섞여서 이상한 표현하고.. <- 그렇다고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님. 결론적으로 둘 다 구림.... 지난 번 동생이랑 오랜만에 만났을 때 동생이 말 더럽게 못한다고 뭐라 한 적도 있.... ((((((((나)))))))) 


그렇게 이번에도 뭔가 혼자 찔려서 움찔움찔한 순간을 몇 번 보내고 수다 떨고 나니 그냥 한국에 있는 것처럼 마음이 무지 편안해졌다. 


친구가 온 것도 그렇지만 사실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도 한 몫 했다. 괜찮은 레스토랑 - 음식 맛이 좋으면서 실험적이고, 식사 하는 동안 불편한 것 없이 챙겨주는 서비스, 그리고 너무 정신 산만하지 않은 분위기의 장소 - 에서 식사하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그런 곳에 간지 시간이 꽤 지난 상태였다. 이런 거 좋아하는 한국인 친구 자체가 이 동네엔 아예 없고, 다들 유학생의 처지인지라 굳이 비싼 곳을 찾아다니며 먹고 싶지 않아하는 친구가 대부분이라.... 가장 최근에 좋은 곳에서 식사한 기억이 10월에 동네에 있는 미쉘린 원스타 레스토랑이었던 듯.. 무려 두 달 전......휴.   



마침 둘 다 제이미 올리버의 Fifteen에 가보고 싶어했어서 이번 기회에 시도했는데 넘나 맛있는 것.... 제이미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좀 너무나 실험적이라 인상이 깊긴 하지만 맛있게 잘 먹었다!! 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 곳인데, Fifteen 은 분위기도 좋고 장소도 좋고 오- 맛있다!!! 라는 말이 나오는 곳이었다. 조명이 내 뒤에 있어서 계속 그림자가 지길래 옆에서 찍었더니 저 모양...ㅠㅠ 스타터로 주문한 비트 & 고트치즈, 크랩 비스크, 메인인 포크춉, 사이드로 시킨 샐러드와 포테이토 케이크까지 완전 성공적으로 맛있었음 ㅠㅠ!!! 



진짜 이런 거 너무 좋다... 내가 메인으로 시켰던 포크춉. (그림자...그림자 ㅠㅠ!!!) 우선 크기가 장난 아님. 아래는 익힌 케일과 파스닙이 깔려있고 위에는 튀긴 돼지껍데기를 갈아 올렸음. 밑에 깔리는 사이드나 스프링클까지 신경써서 하나의 음식을 구성한 이런 노력과 구상이 재미있고 좋아서, 이런 걸 먹으면 밥을 먹으면서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게 된다. 왜 여기에 이런 사이드를 넣었을까? 이런 소스를 사용했을까? 이런 걸 뿌렸을까? 생각하면서 맛을 음미하다보면 상상력이 샘솟하서 신나고 더 맛있는 느낌.. 물론 실험적이기만 하고 맛이 없으면 절대 신나지 않는데 디저트가 약간 그런 케이스였음. 내가 시킨 초콜릿 무스는 오렌지 소스가 곁들여져서 완전 내 스타일이었는데 다른 디저트들이... 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들이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암전). 


처음 앉았을 때는 두 시간 동안 다 먹고 나가야된다고 그러더니, 우리가 하도 많이 시켜서 계속 먹으니까 두 시간이 훌쩍 넘어도 뭐라 하지 않던 Fifteen 이었읍니다. 


이런 걸 먹고 와인을 마시고 옛얘기, 사는 얘기 하다보니 향수병이 낫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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